20080218 :: 싸이코패스에 대한 몇 가지 상념

영화 ‘검은집’에서 소개하여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단어 ‘싸이코패스’ .(외쿡어 표기법에는 ‘사이코패스’가 맞을 듯 하지만 왠지 뉘앙스가 틀려보여서 그냥 이대로 표기하겠습니다.) 영화 ‘추격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싸이코패스로 분류된 ‘유영철’의 사건을 영화화 한 것입니다.

정말이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또 그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전혀 가지지 않는 종자들인 싸이코패스에 대한 연구는 사실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영화 ‘검은집’ 이후로 싸이코패스에 관한 KBS의 추적60분의 내용이 방영된 적도 있었지요. 어쨌거나 이런 무시무시한 종자들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영화 ‘추격자’가 관객에게 주는 충격은 실로 대단하다 하겠습니다. (‘추격자’ 감상 소감에서 밝혔듯이 잔인한 장면이나 강도높은 폭력의 직접 묘사는 없습니다만, 영화는 꽤 무섭습니다.)

이러한 싸이코패스를 다룬 헐리웃 영화가 한 편 있지요. 바로 왕년의 스타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미스터 브룩스’입니다. 사실 ‘추격자’와 ‘미스터 브룩스’의 연쇄살인범은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인물의 딱 중간 쯤에 제가 생각하는 싸이코패스의 개념이 서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싸이코패스를 정의하는 학술적인 정의들은 좀 있습니다만, 특정한 병증이나 성격적 성향 혹은 (어느정도 개연성이 입증되었다고 볼 수 있는) 신체적, 화학적 속성을 일일이 돌아보지 않더라도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로 압축됩니다.

그것은 바로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싸이코패스들은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유영철은 어떤 여자를 좋아한 적이 있었다고 진술한적도 있고 영화에서 보여지는 사이코 패스들도 이런 저런 감정 같은 것은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통계적으로 북미에만 300만명 가까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싸이코패스를 일상 속에서 쉽게 분간할 수 없는 것도, 이들이 ‘감정을 느끼기에’  일상 생활 속에서 쉽게 다른 사람들과 섞이며 그 정체를 숨길수 있는 것일테니까요.

경찰서에서 신나게 두드려맞고서는 어리버리 한 모습을 보이는 ‘4885’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친 살인마’의 모습을 보기는 어렵지 않던가요. 하지만, 저는 그 때 느꼈습니다.이건 분명 많이 보던 장면이라는 것을요.몇 년 전 있었던 밀양 성폭행 사건. 그리고 또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벌어진 비슷한 폭행 사건.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고, 학생의 신분이라고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그 색히들의 싸이월드 스크린샷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 거렸습니다.

가학의 대상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없고, 스스로의 행위가 잘못인줄은 인식하고 있지만 별다른 죄책감이나 자기 억제가 되지 않는 증상. 다름아닌 ‘싸이코패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이도 어리고 초범에 학생의 신분인 만큼 스스로가 무거운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똑똑히 압니다.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이용하는 것이지요. 사실 학생이 어지간한 사고를 치면 심해야 퇴학입니다만, 그럼 다른 곳으로 가서 학교를 다시 다니면 그만입니다. (다니고 안다니고는 결국 본인의 의지에 달린 부분이니까요.) 게다가 그냥 정학 정도로 끝난다면 나중에 또 대형사고를 친다고 한 들 포인트가 누적되는 것처럼 저지른 죄들이 적립되어 한꺼번에 처벌 받는 일도 없는 것이지요.

더더욱 불행한 것은 학창시절에 가끔 볼 수 있는 이런 양아치들보다, 나이를 먹어가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싸이코패스로 의심가는 인물들을 매우 놀랄만큼 높은 확률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또한 웃긴 것은 그러한 싸이코패스로 의심되는 인물들은 ‘추격자’보다는 ‘미스터브룩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 소외받은 자들이 모여있는 그늘이 아닌 경제 활동의 중심이나 권력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게지요. 실제로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옆의 누군가를,내 앞의 누군가를 밟아 뭉개야 하는, 그리고 그 강도가 점차 강해져가는 피라미드의 상위에서는 다름아닌 ‘사이코패스’만큼 꼭대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도 그 만큼 큰 것이죠.

그래서 걱정이지요. 아무래도 이번에 ‘저 꼭대기’를 꿰차고 앉은 아저씨를 보면 싸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성인 ‘죄책감이 없다’, ‘동정심이 없다’라는 게 뚜렷이 보이거든요. 물론 싸이코패스라고 해서 엑스파일의 ‘녹색인간’처럼 자기 방을 찐득한 점액으로 반죽한 신문지로 도배를 하는 건 아니시겠지만, 뻔하디 뻔한 거짓말을 얼굴색하나 안 변하고 내뱉는 몰골을 보고 있노라면 (그리고 그 아저씨랑 이상하게 얼굴이 닮은 아줌마도 계시대요)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부모님은 제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아저씨를 기어이 찍고야 말았는데요, 벌써부터 신문 기사 같은 걸 보시더니 ‘니가 걱정하던 일들이 진짜로 일어날 거 같다’며 불안해 하십니다. 글쎄요 그냥 가혹한 5년이 되리라 예상은 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잘 버티고 지낼 수만 있다면 5년 뒤에는 저랑 같은 사람을 안찍어도 좋으니, 그냥 투표일에는 투표하지 말고 어디 짧게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라고 권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