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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6 :: 마이클 클레이튼

2007년을 마무리하는 웰메이드 필름

마이클 클레이튼을 이렇게 소개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왠지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봐주어야 한다는 어떠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던 차였지만, 당췌 뭔가 볼만한 작품이 없다는 것이 저를 혼란에 빠지게 하더군요. 아니 이렇게 말을 하면 안되겠지요, ‘볼만한 작품이 없었다’기 보다는 ‘끌리는 작품이 없었다’라고 해야하겠군요.
기대에 기대를 모으던 ‘나는 전설이다’는 원작 소설을 완전히 배신하면서 끝끝내 주인공을 ‘전설’로 만들고 싶어했던 어이없는 결말로 인해 원작의 세 번째 영화화라기 보다는 이전 작품인 ‘오메가 맨’의 리메이크였다는 이야기에 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 버린데다가 (원작 소설을 읽어보셔야, 왜 제목이 ‘나는 전설이다’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여자 친구는 회사에서 단체 관람으로 저를 떼놓고 먼저 보고 말았다지요. 물론, 지금도 저는 ‘나는 전설이다’가 매우 보고 싶습니다만, 그것은 온전히 극장에서 ‘나는 전설이다’를 보게되면 본 편 상영직전에 “배트맨 : 다크 나이트”의 7분짜리 맛보기 영상을 볼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아직 개봉은 안 한듯 하지만 ‘내 사랑’과 같은 연말 ‘러브 액츄얼리’ 재탕, 삼탕 영화 역시 그리 시선을 끌지 못합니다. 게다가 멜로물 자체를 극장에서 볼만한 체질의 소유자는 아니니까요.(‘원스’를 보지 않았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원스’는 결코 ‘멜로’물이 아닙니다. 물론, 다분히 멜로의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지만 뮤지컬의 탈을 쓴 ‘다큐멘터리’입니다.이 영화가 국내에서 꽤나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인은 전적으로 심금을 울리는 멋진 스코어에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때마침 ‘색계’도 극장에서 간판을 내리는 시점이더군요. 음, 하지만 ‘마이클 클레이튼’만큼은 왠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흥행에서는 그리 좋은 결과를 못 낸 작품으로 소문을 들었습니다. 쟁쟁한 배우들과 감독(에게는 데뷔작이긴 하지만 말이지요. 하지만 토니 길로리는 멋진 이야기꾼이니 후회는 하지 않을 각오를 하기에는 충분한 크레딧 아닌가요)이 만났으니 멋질 거라는 기대는 들더군요. (당연히 이러한 기대는 꽤 위험합니다)
어쨌든, 흥행에서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말랑말랑 가벼운 크리스마스 멜로물도 아니고, 액션이나 판타지도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왠지 끌렸습니다. (무척이나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도 드는 군요) 그리고 넌지시 여자친구에게 ‘저거 보고 싶다’고 운을 띄웠었고, 이번 주에 그녀는 어디선가 좀 알아봤는지 “평단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며 흔쾌히 보러 가는 것에 수긍해 주었습니다.

결과는 역시 대만족

네, 관람 결과는 대만족입니다. 마이클 클레이튼의 연출은 전반적으로 물흐르듯 순탄해 보이기만 합니다. 어찌보면 약간은 실망스럽기도 하지요. 초반의 자동차 폭파씬에서 뭔가 스토리상 급전환 (액션 로망으로의…?)이 예상되었지만, 곧바로 4일전의 이야기로 돌아가 버리지요.
이제는 정말 ‘아우라’라는 것을 갖추었다고 생각되는 조지 클루니와 톰 윌킨슨의 연기는 정말 훌륭합니다. 물론 예고편이야 뭔가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게 가장 중요하다 보니, 조지 클루니가 “기적의 사나이”로 등장하는 점을 부각하고 “뭐든지 해결하는” 분위기로 몰아서 폭발적인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생각케 하지만 사실 영화의 초반 흐름은 너무나 잔잔하기만 (?) 하고, 조지 클루니는 멋진차와 코트만 빼면 찌질하기 그지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인 마이클 클레이튼 씨는 초반에는 거의 메인 줄기를 이루는 사건과는 무관하게 멋도 모르고 빙빙 돌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줍니다. 따라서 초반에서 중반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꽤 지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우, 하지만 이게 왠 겁니까. 아주 짧은 엔딩 크레딧(클로징 부분이 엔딩 크레딧과 겹쳐있습니다.)부분에서는 전율을 느끼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네 이 영화에서는 그 흔한 총격신 하나 없이 끝까지 진행이 됩니다만,4일 전부터의 행적을 다시 비추어주면서 사실 어느 순간 부터 마이클 클레이튼은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핵심 인물이 되었고 그것을 (제 직감입니다만) 깨닫는 시점은 마이클 클레이튼과 관객이 동일합니다.
그리고 나서의 이야기 상의 반전이 있기는 합니다만, 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을 그 점이라고 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 있음을 깨닫는 마이클 클레이튼.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걸어 왔는지 깨닫는 관객. 토니 길로리는 매우 정직하게 어떠한 단서를 꼬불쳐 두거나 스크린속 인물들하고만 공유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치 소설을 읽어 나가듯이 차근 차근 페이지를 넘겨나가면서 점점 큰 재미를 느끼는 경험을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조금 색다른 경험이더군요.
그리고 제가 ‘어거스트 러시’의 흥행 여부를 직감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 느낌으로 ‘마이클 클레이튼’이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감은 매우 강하게 듭니다. 하지만 흥행 1등 하는 영화가 그 해 최고의 영화는 아니겠지요. 뭔가 매우 맛나는 별미를 사람들 몰래 먹은 것 같은 달콤함이 남는 (물론 영화는 그리 달콤한 내용을 다루지는 않아요) 영화였습니다.
연례행사 같아서 추석 재탕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분들은 한 번쯤 눈여겨 보셔도 좋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토니 길로리와 조지 클루니가 다시 만나서 조금 더 큰 스케일의 작품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강한 예감도 드는데, 그걸 기다려 봐야지… 하고 생각이 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