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나리 인지 날라리 인지.. 암튼
절대, 결코 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이 영화를 개봉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놀라시는 분들도 있을 수도 있겠네요. 뭐 워낙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즐기는 편이기는 합니다만, 예고편을 보기만해도 쓰레기 간지가 폴폴 나는 ‘여고생 시집가기’, ‘카리스마 탈출기’와 진배 없을 이 영화를 그것도 돈 내고 봤다는 겁니다.
어쩜 이런 일이… 그러니까 길고 긴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수요일 철야를 하고 잠 한 숨 못 잔 상황에서 대구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졸지 않고 (- _-) 꿋꿋이 저녁까지 버티며 장시간의 힘든 회의를 마치고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동대구역에 와서는 거의 패닉 직전에 이를 뻔 했습니다.
5일 저녁부터 이어지는 릴레이 촛불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너도 나도 열차와 버스를 이용해 서울로 집결하다 보니, 이미 그 시간대에는 서울행 기차표가 전부 매진인 것이었죠. 어쩜 이럴 수가… 대구로 출발하기 전에 혹은 동대구역에 도착했을 때 돌아가는 표를 사 두고 싶었지만, 회의가 언제 끝나는지는 고객의 마음이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어쨌든 창구에 매달려서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영화관람석’이라는 희한한 자리가 남아서 그걸 타고 왔습니다. 물론 그 때는 무슨 영화를 해주는 지도 별 관심이 없었고, (매우 좁긴 하지만) 어디든 의자에 뒷통수를 대고 잠을 좀 자고 싶은 생각 뿐이었거든요.
하지만 그게 좀 녹록치가 않더군요. 그냥 불꺼져서 어두 컴컴한 걸 제외하고는 일반 KTX 객실하고 아무런 차이가 없는 객실 가운데에 스크린이 있고 프로젝터로 거기에 영화를 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어폰 같은 걸 제공해줄 줄 알았는데 너무나 조악한 음질의 스피커로 (아니면 그 영화의 음향 자체가 조악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틀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비하면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아무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의지로 탑승한 기차였고, 영화 따위 관심없으면 자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이게 큰 오산이었습니다.
시종일관 떠드는 영화, 정작 이야기는 없네
요즘은 워낙에 TV를 안보고 사는지라 누가 인기 있는 가수이고 개그맨인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one more time’이 여기 저기서 많이 흘러 나오는 걸 보면 쥬얼리의 인기는 여전한 듯 합니다. 물론 요즘은 어디서 뭐하는지 잘 안 보이는 박정아양보다는 ‘우리 결혼했어요’의 ‘신상녀’ 서인영양이 그 인기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는 추측만 할 따름이지요.
어쨌거나 예전에 박정아양이 좀 잘 나가던 무렵, 으레 좀 나간다 하는 가수들이 스크린에 진출하는 것처럼 (물론 대부분 결과는 빤합니다만) 박정아양을 전격 주연으로 발탁해 만든 영화라는데서 박정아 개인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이 얄팍한 영화는 한국 영화를 너무 많이 만든 건지, 아니면 만들지 말아야 할 영화를 많이 만든 건지 완성해놓고도 오랜 시간을 개봉 관을 잡지 못해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게 이 영화의 큰 패착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짝하는 인기에 편승해서 한 껀 올리려고 했는데 막상 영화가 겨우 개봉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이미 박정아 양은 TV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연예인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그 사이에 이미 ‘못말리는 결혼’이 좀 비슷한 컨셉으로 나와서 ‘김수미 효과’를 톡톡히 봐온 뒤라 아무래도 좀 식상한 소재를 갖고 뒷북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박정아양은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삼삼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이후에도 시트콤 같은 곳에서도 종종 나타나서 나름대로 가수 치고는 괜찮은 연기를 선보였더랬습니다. 그럼요.. 횰양보다는 훨 나았다고 볼 수 밖에 없죠.
아 그러나 너무 박정아양의 연기력만을 믿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이 영화의 연출이나 각본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영화는 시종일관 박정아의 나레이션으로 ‘때웁’니다. 이건 정말 땜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숙면을 취하기를 포기하고 눈을 뜨게 만들 초반 15분 가까운 시간동안 박정아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이어져 나왔습니다. 눈을 감고 있노라니 이게 대사를 연속적으로 계속 치고 나가는 건지 (혼잣말 포함해서) 아니면 입은 다물고 있는데 나레이션이 자꾸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만, 눈을 감고 있었던 시간 동안의 내용은 너무도 생생하게 머리에 남아서 눈을 뜨지 않고서도 본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제아무리 박정아양의 팬이라 하더라도, 듣기 좋게 정제된 목소리, 억양이 아닌 막 흘러나오는 라이브보다도 어색한 쉼없는 나레이션에는 좀 질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뭐 영화는 충무로산 돈낭비 영화들이 갖추고 있는 요소는 빠짐없이 다 끌어모아서 담아두려는 욕심이 컸는지 결혼 반대하는 집안도 나오고, 원나잇 스탠드 (*-_-*)도 나오고, 조폭들도 나오고 이래 저래 다 나옵니다.
그러나 너무나, 너무나 식상할 따름입니다. 분명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했을 것 같은 생각을 처음에 살짝 했을 것도 같다는 느낌이 어찌 생각하면 들 수도 있는 이 영화에서 ‘웃기다’는 점은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막판에 대포 쏘는 장면에서는 어이가 없어서 한 번 피식 하긴 했어요. 인정합니다.)
단지, 이 영화의 상영 시간인 110분을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오랫동안 잠을 못자 머리속이 하애졌던 까닭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비싼 요금을 내고 본 셈이 되었지만, 그건 결국 출장비로 처리될테니 배가 아프지는 않네요. 그냥 만든 돈이 아깝기는 하지만, 이런 영화 묵혀두는 동안 여러번 볼 기회는 많았을터인데 당장은 제작비 만큼 손해를 보더라도 이런 영화 그냥 등장인물들이랑 제작진이 소장용으로만 간직하고 폐기하는 것이 어땠을까라는 잔인한 생각도 해봅니다. 그저 이런 영화들이 극장에 내걸릴 때마다, 관객들은 헐리웃 영화로, 홍콩 영화로 내몰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그 반대 급부로 얻는 것도 있습니다. 간밤에 잠도 안오고 심심해서 하나포스 사이트에서 (하나로 회선 사용중임) ‘상사부일체’를 봤었는데요,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날나리 종부전(날라리 종부전?)’의 덕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심심해도 ‘상사부일체’를 다시 볼 생각은 없습니다. 이제는 좀 제정신이 돌아왔다고 생각이 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