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에 대한 생각

띄어쓰기에 대한 생각
Photo by Suzi Kim / Unsplash

업무 메일을 쓸 때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메일 말미에 ‘업무에 참고 부탁 드립니다.‘인데요, 어느 날부터 아웃룩에서 이 ‘부탁 드립니다’가 틀렸다고 맞춤법 지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맞는 말은 ‘부탁드립니다’라고 붙여 쓰는 거라고.

사실 아래아한글 시절부터 이전의 MS워드까지, 워드프로세서들의 한국어 맞춤법 검사 실력은 거의 있으나 마나 한 것이어서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느낌상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은 붙여 쓰기에는 너무 긴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래서 한 번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상위에 표시된 결과에서는 띄어 써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출처가 네이버 블로그이기 때문에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무조건 일단 틀렸다고 의심해봐야 합니다.

국립 국어원의 한국어 어문 규정의 제 1장 제 2항은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단어는 독립적으로 쓰이는 말의 최소 단위이며, 띄어쓰기의 기준이 됩니다. 단, 단어 가운데 조사는 독립성이 없어 앞말에 붙여 씁니다. ‘동생이 밥을 먹는다’에서 ‘이’, ‘을’은 조사이므로 앞말에 붙여 쓰고, 그 외의 모든 단어는 단어별로 띄어 씁니다.

동사나 형용사는 어간과 어미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어간이나 어미는 독립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고 어간과 어미가 서로 결합해야만 단어가 됩니다. 예를 들어 ‘먹-‘, ‘-는다’는 각각은 단어가 아니고, 이 둘이 결합한 ‘먹는다’는 단어입니다.

조사 역시 앞말이 없이는 단독으로 사용되지 못하지만, 그 앞말(체언)과 분리되었을 때, 체언은 자립성을 유지합니다. ‘밥을’을 ‘밥’과 ‘을’로 구분했을 때, ‘밥’은 여전히 자립적입니다. 이러한 점은 동사나 형용사가 어간과 어미를 분리했을 때 둘 다 자립성을 잃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러한 차이에서 조사는 어미보다는 단어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조사를 제외한 모든 단어를 띄어 쓰면 되는 것이니까, 띄어쓰기는 아주 간단한 문제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묻겠습니다. ‘단어’란 무엇일까요? ‘단어를 띄어 쓰다.’에서 ‘띄어’와 ‘쓰다’는 띄어 써야 합니다. 하지만 ‘띄어쓰기’는 붙여 씁니다. ‘띄어쓰기’는 단어이지만 ‘띄어쓰다’라는 단어는 없기 때문이죠.

한국어 어문 규정의 41항에서 50항까지는 다시 띄어쓰기에 대한 세부 사항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부 사항의 규정 내에는 보조 용언에 대한 붙여 씀을 허용하는 사항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띄어쓰기가 어려운 이유로 보조 용언에 대해 붙여 쓰는 규칙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붙여 씀을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띄어 쓰는 것이 거의 모든 상황에서는 맞습니다.

** ‘단어별’에서 ‘-별’은 ‘그것에 따른’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입니다. 접미사는 어근이나 단어의 뒤에 붙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말이며, 그 자체로는 단어가 아닙니다. 접미사가 붙은 말은 그 자체로 새로운 단어가 되었으므로 ‘단어별’은 붙여 씁니다.

결국, 띄어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이 말이 어디까지가 단어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 두 개의 문장을 보겠습니다.

  1. 이보게 젊은이, 이것 좀 들어 주게나.
  2. 이보게 젊은이, 이 부탁 좀 들어주게나.

‘들어주다’라는 말이 한 쪽에서는 붙여 썼고, 다른 한 쪽에서는 띄어 썼습니다. 왜냐하면 2.의 ‘들어주다’만이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국어 대사전에서 ‘들어주다’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부탁이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의 ‘들어주다’는 하나의 단어입니다. 1. 의 용례에서 ‘들어 주다’는 보조 동사인 ‘주다’가 ‘들어’와 같이 쓰인 경우입니다. 물론 어문 규정 제47항(보조 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에 따르면 붙여 쓸 수 있습니다.

본용언과 보조용언을 붙여 쓸 때에도 무조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본용언 + 아/어 + 보조용언’의 구성인 경우에 허용됩니다. 그 외에 ‘관형사형+보조용언’의 구성도 붙여 쓰는 것을 허용합니다. 주로 의존명사에 관형사형 접사가 붙은 경우로 ‘아는 체하다.’ 를 ‘아는체하다.’라고 쓸 수 있도록 허용해줍니다.

이러한 허용은 이러한 구성이 합성어가 되어 하나의 단어가 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도와주다’는 ‘돕다 + -아 + 주다’의 구성이지만, 국어 대사전에는 ‘도와주다’라는 단어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즉, 단어죠. 따라서 이 경우는 붙여 써야 합니다. 심지어는 이런식으로 새롭게 사전에 등재되는 단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뻐하다’는 ‘예쁘다’와 보조 동사인 ‘하다’가 합쳐진 것이지만, ‘예뻐하다’ 그 자체가 하나의 단어로 2023년에 국어대사전에 등재되었으므로 이제는 ‘예뻐 하다’로 띄어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결론은 국어 사전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전에서 표제어를 찾고 문장이 쓰인 의미와 같은 맥락의 정의에서 어떤 품사인지를 알아내면 띄어 써야 할 지 붙여 써야 할 지를 알 수 있겠네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사전 없이 올바르게 띄어쓰기를 하기가 이렇게 힘들다면, 일반인들에게 띄어 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네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드리다’는 명사 뒤에 붙어서 공손함의 뜻을 더하고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입니다. 접미사가 붙은 말은 하나의 단어로 취급할 수 있으므로 ‘부탁드립니다’로 붙여 쓰는 것이 맞습니다. ‘요청드립니다’도 같은 맥락에서 붙여 쓰는 것이 맞습니다. ‘알려 주세요’는 본용어에 보조용언 ‘주다’가 연결된 구성이므로 띄어 쓰는 것이 맞습니다. (붙여 씀이 허용 되는 케이스이기도 함)

참고로 ‘부탁드리다’는 사전에는 단어로 등재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도와드리다’는 사전에 등재되어 있어, 역시 혼란스럽기는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