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DOO QK61 V2
60% 배열 최고 가성비, QMK/VIA 지원 61키 유무선 키보드
아니 무슨 사람 팔이 열 개 스무 개인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키보드 유튜버가 될 것도 아니라서 지금 가지고 있는 키보드나 잘 쓰고 잘 관리해야지...하던 차에 이런 키보드가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풀알루 키보드로 제법 많이 알려진 V87 PRO의 제조사인 CIDOO에서 QK61 V2를 내 놓았습니다. (사실 나온지는 제법 꽤 됐을 수도 있습니다.) 처음 이 키보드가 눈길을 잡아 끈 건 딱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방향키조차 없는 61키라는 것과, 광군절이기는 하지만 4만원이 살짝 안되는 39,200원이라는 가격이었습니다.
작은 사이즈의 키보드를 좋아하긴 하지만, 61키는 그런 저도 제법 망설이게 만듭니다. 왜냐면 없는 키가 매우 많기에, 부족한 키로도 '어느 정도의 글 작성과 편집'을 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법 좋은 펌웨어와 설정을 위한 소프트웨어가 필요하기 때문인데, 4만원도 채 되지 않는 가격대에서 이런 소프트웨어를 기대하는 것이 더 바보같은 행동이 아닌가 싶거든요.
그런데, 이 제품의 이름이 QK로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QMK/VIA를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QMK 소스가 공개되어 있지는 않지만, VIA를 지원하기 때문에 키 맵핑 설정에서의 자유도는 어느 정도 보장됩니다. (레이어 수가 4개라서 조금 빠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키가 넉넉한 다른 키보드에서도 키보드의 자체 기능이나 AHK 같은 소프트웨어의 힘을 빌어서 capslock + hjkl 을 방향키로 사용하는데 익숙해져 있어, 61키에 대한 세팅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장난 반 기대 반으로 올해 광군절의 알리 쇼핑은 이 제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배송은 구매로부터 거의 한 달 가까이 걸렸습니다. 요즘 알리 상품들 엄청 빠르게 배송되었지만, '아 원래 알리는 이렇게 주문해놓고 잊고 지내는 거였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살다보니 배송은 어떻게든 오긴 하더군요.
제품 박스는 뭐 딱히 기대감 없는, 다소 볼품 없다고 느낄 수 있는 싸구려 박스입니다. 가격을 생각하면 여기서 더 기대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죠. 그래도 이 상자 속의 구성은 나름 알찹니다.
ESC 키와 엔터키의 키캡은 투명한 핑크 키캡입니다. 아 이런거 딱 질색인데, 다행히 박스 안에는 검정색으로 교체할 수 있는 여분의 키캡이 제공됩니다. 그리고 키보드를 꺼내서 탁탁 눌러보기 시작하는데...
놀랍습니다. 베어본도 아니고 완본체의 가격이 5만원 이하에서 이정도 키감이나 타건음은 정말 대단합니다. 스테빌라이저의 윤활은 조금 부족한지 약간 서걱이는 느낌은 남아 있습니다만, 그래도 따로 추가로 손볼 필요 없이 거의 완벽한 상태입니다. 기본 제공되는 pearl white라는 스위치는 HMX Raw 스위치하고 느낌이 비슷한데, 워블도 적고 윤활도 충실하게 되어 있어 타건감이 부드럽습니다. 덕분에 스위치는 살짝 고압이라, 손목을 들고 경쾌하게 타건할 때의 느낌이 꽤 고급스럽고 좋습니다.
하우징은 반투명이라 하기에는 속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80% 정도 불투명도 느낌의 플라스틱 소재라, 내부의 LED 불빛이 바깥으로 비쳐보이지만 직접적으로는 속이 들여다 보이지 않습니다. 하우징 외부도 코팅되어 있는 듯 좋은 촉감이고, 겉보기에도 나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감도 상당히 고급스럽습니다.
결론
개인적으로는 독거미 F87보다도 타건감이나 소리에서 월등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가격대에서 진짜 VIA를 지원하는 61키 키보드라는 점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든 아니든 소장 가치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 배열의 압박을 절대 무시하지 못하기에 대중화는 좀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이 정도 가성비로 75배열 정도로 나와준다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손에 익은 키맵과 함께라면 업무용 주력 기기로도 충분히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마음에 드는 제품입니다. (물론 소리가 제법 크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사용하기에는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