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2 :: 치과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서 저희 가족 및 친지 들은 대부분 좋은 치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유전적 장점(인 동시에 사회적으로는 축복)이 제게까지는 전달되지 못한 듯 합니다. 가족 들은 다들 고른 치열과 튼튼한 치아로 맛난 것들 꼭꼭 씹어서 맛있게 드시고 계시지만, 제 경우는 좀 많이 달랐습니다. 전 선천적으로 충치가 잘 생깁니다.

그야말로 살을 에고 머리속을 찢어놓는 듯한 통증. 게다가 밤이되면 더더욱 심해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 이러한 경험은 제가 미취학 아동이었던 그 시절에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 중 하나입니다. 집에는 민간 요법으로 이빨이 아플 때 물고 있으라고 소 쓸개까지 상비하고 있었으니까요. 어린 나이에도 견디기 힘든 치과 치료를 그래도 잘 견뎠던 편이었던 것으로도 기억합니다. 하기사 얼마나 치과를 자주 드나들었으면 꼬꼬마 시절부터도 안 울고 잘 다녔겠습니까. 그 시절에는, 특히 지방에서는 정말이지 무척이나 귀했던 바나나를 그렇게 치과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어머니가 사주신 기억이 납니다. 꼭꼭 씹을 이빨도 없었기에 천천히 먹으라며 어색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당신의 조그만 아들 녀석이 치과 치료를 잘 감내했다는 대견함보다는 몇 날 몇 일밤을 울며 앓았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리고 한동안은 치과를 다닐 일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터 이가 빠지기 시작해서 (이를 간게 아니라 빠지기만) 앞니는 잇몸으로만 몇 년을 지낼 정도였고, 결국 유치가 모두 빠지고 새 치아가 난 것은 놀랍게도 중학교 2학년때입니다. 그 때까지 이 갈이를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 갈이를 하고 난 이후에도 제 삶은, 특히나 그 중의 한 부분 ‘치아 인생’은 여전히 모질기만 했습니다.

돼지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먹던 중 물렁뼈를 씹고 어금니의 3/4가 부러져 날아가기도 하고, 경찰 병원에서 마취도 없이 이빨을 갈아대다가 문제가 생겨서 장장 4시간반에 걸친 치료를 사제 병원에서 받아보기도 하고, 사랑니 빼는게 너무 아팠는데 집에 가는 버스안에서 마취가 되어 집에 잘 갔던 기억까지 말이지요.(이렇게 쓰고보니 치과에서 주마등을 본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겠군요)

다시 시간이 흘러 2007년 초에 멋지게 220만원을 카드 일시불로 긁으면서 화려하게 치과 치료에 복귀하였으나, 예전에 치료받았던 치아에 또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었습니다. 치과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면서 느꼈던 사실 중 하나가 바로 ‘치과는 시간 끌면 몸버리고 돈버린다’라는 것이었기에, 이가 좀 시리기 시작한 그저께부터 치과를 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정말 너무 바빴고, 어제는 정신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그냥 시리기만 하던 곳이 욱씬거리기 시작하더니 일상 생활에 지장이 갈만큼 통증이 더해가더군요. 급기야 오늘은 밥을 못 먹을 지경으로 아프기 시작해서 치과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진료 마무리를 못하고 한 시간 반이나 입을 벌리고 누워있어야 했습니다. 피가 코로 넘어올 정도로 많이 나긴 났나 봅니다. 암튼 소독약 냄새가 아닌 피비린내 진동하는 치과 경험은 또 좀 새롭긴 하더군요.

고난의 시간을 극복하고 나니 지금은 그나마 불편함이 덜 하군요. 여전히 욱씬거리고 아프긴하지만 절대로 절대로 치과는 미뤄선 안되는 거라는 걸 오늘도 다시 한 번 마음 속 깊이 아로 새겨 봅니다.

여러분은 치과하면 떠오는 기억들이 있으신가요?

  • 1004

    전 스케일링 받다가, 시려서 욱~하고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 간호사 언니 슴가를 헤딩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 1004 // 저런 아름다운!!! 전 간호사 하면 엉덩이 주사 맞고 뒤돌아봤더니 초등학교 동창이었다는 그런 기억이…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