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정가제 반대를 반대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도서 정가제 반대를 반대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아이폰으로 포스트 작성하다가 (요즘 markdown 편집기를 가지고 아이폰으로 포스팅하는 데 재미들림) 쓰는 중에 빡쳐서 급히 맥북을 두드리는 것으로 작전 변경.

이미 시행중인 책값 보장 정책

현행법으로도 이미 인터넷 서점은 신간 도서에 대해서 할인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즉 출간한지 1.5년이 안된 책은 제아무리 싸게 사봐야 19%할인 받는 게 최고다. 심지어 이 정책은 올해로 시행 10년을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 정가제는 왜 또다시 대두되었나? 기존의 도서 정가제가 허점 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이 정책에 의하면 단지 출간된지 18개월이 안된 신간만이 최대19%만 할인이 제한되었다. 그리고 참고서젹이나 실용서등은 저 정가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 나라에서는 제일 잘팔리는 카테고리의 책들은 나오자 마자 반값에 팔아도 되는 거였고 그리고 그마저도 1년 반만 기다리면 아예 모든 책들이 “할인폭의 아무런 제약없이” 헐값에 팔려 나가도 되는 거였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재밌는 점은 이미 이런 정가제가 시행되기 이전인 그러니까 10년도 더 된 옛날엔 이런 법따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대형서점이든 동네서점이든 장사하는 사람 마음이라면 99% 할인해서 팔아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실제로 인터넷이 널리 퍼지기 이전인 98년 정도만 하더라도 서초동에 있는 서울교대 후문쪽에 가면 새빨갛고 엄청 두꺼운 {무슨 프로그래밍 언어}바이블… 뭐 이런 책들을 반값에도 사고 그랬었다.

그러다가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 서비스가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결국 인터넷을 책을 파는 인터넷 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점들은 실질적으로 매장을 운용할 필요가 없고 유통 경로 또한 그만큼 단축 시킬 수 있었기에 상당히 싼 가격에 책을 팔 수가 있었다. ‘어? 어!’하고 손 놓고 당하던 대형 서점들이 부랴부랴 자신의 브랜드를 건 인터넷 서점을 만들었지만, 대형 서점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 사업을 아예 접을 생각이 아니고서야 인터넷 서적 전문 사이트와 같은 수준의 할인율을 제공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기다리던 신간을 빨리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지 않은 이상에야 하루 이틀만 기다리면 집으로 배송되고 가격까지 훨씬 싸서, 결국 사다보면 배송비을 빼도 더 싸게사는 꼴이 되는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결국 도서 유통의 주도권은 인터넷 서점으로 순식간에 넘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는데는 몇 년이라는 시간도 그다지 필요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서점이란 “문화공간”이라는 컨셉과 만날 약속 장소 정도의 의미로 퇴색되었다.

대형 서점은 손 놓고만 있었나

아니다. 대형서점에서도 자체적인 여러 할인 행사, 쿠폰, 포인트 적립 등 다양한 할인 수단들이 있었고, 때에 따라서는 몇 몇 출판사들과 함께 대규모 할인 행사 등도 진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든 마케팅들은 잘 안됐다. 왜? 이런 대규모 할인 행사를 진행하는 출판사들이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할인 행사 했을까? 당연히 온라인에서는 더 싸게 책들을 살 수 있었다.

여담인데, 내 경우에는 3권짜리 세트의 세 번째 책 한 권을 인터넷 서점에 주문했는데, 배송이 박스로 왔더라. (아 당연히 박스로 오는구나) 3권짜리 세트와 세트를 사면 주는 증정품과 함께. 무슨 나도 모르는 행사가 있었나보다 싶은 정도였다. 아무튼 2000년 쯤의 출판사들은 책이 아닌 재고를 찍어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도서 정가제를 시행했는데

아무튼 이대로는 게임이 안되다 보니 출판업계와 대형서점들은 “저 새끼 나쁜 새끼”라며 인터넷 서점에 돌을 던지며 한쪽으로는 도서 정가제 시행을 요구했고, 그들의 입장이 얼마나 수용되었는지는 모르지만 10년전인 2003년에 현재와 같이 신간 도서에 대해 할인을 제한하는 정가제가 시행되었다.

인터넷 서점은 그래도 그럭저럭 잘 버텼지만 당시로서는 그 충격이 만만치 않았을거다. 아마 내 기억에도 그 때 체감하는 책값들이 너무 비싸서 당분간 책을 사 보지 않았다. (물론 그 때는 막 복학했을 때라 도서관에 가면 됐다.)

그랬는데 이제와서 더욱 강화된 도서 정가제를 시행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아무래도 출판사를 끼고 있다보니 그렇겠지만 언론사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도서 정가제는 착한 정책이라며 나팔을 불어대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거 하나는 자체적으로 출판사를 운영할 것 같지 않은 오마이뉴스가 왜 여기서 도서 정가제의 진실 어쩌구하면서 설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도서 정가제를 주장하는 출판/서적유통 업계의 주장은 이렇다. 10년이나된 이 낡은 도서 정가제는 워낙 빈틈이 많아 도리어 이것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말을 다시 되돌려서 해석해보자. 즉 그나마 잘 팔리는 실용서, 참고서 같은 책 빼고나면 나머지 문학 신간 같은 것들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들 별로 안 팔린다는 게 함정. 그래서 이런 식으로 도서 정가제하자니 오프라인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이나 그냥 신간만 안 팔릴 뿐이고, 할인이 가능한 지점에서는 그다지 메리트를 모르겠더라하는 소리다.

그런데 저들의 주장을 잘 보면 “도서 정가제의 빈틈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는데, 저런 식으로 서적 유통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건 되려 대형 서점들이나 대형 출판사들이 그렇게 하지 않나? 내 차마 이 지점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조용히 키보드를 두들긴다.

사례 1 . 스스로 높은 곳으로 임하시는 베스트셀러

좀 자금력이 되는 출판사는 신간이 나오면 출판사 직원들이 열나가 자기 회사네 책을 사재기 시작한다. 그럼 자연스럽게 그 책은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의 전당에 입성을하게 되고, 사람들은 “아 검증 받은 컨텐츠구나”라며 그 책을 산다. 지마켓에서도 베스트셀러 상품들이 더 잘팔리듯이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 신간은 게 중에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그리고 이런 장난이 근절되었다는 소문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다.

사례 2 . 가격의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

우리 나라 출판사들은 어찌나 그리 책의 디자인 퀄리티에 신경들을 쓰신다. 일단 왠만한 책은 하드커버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게다가 책장이 오돌토돌한 질감을 주는 건 절대로 참을 수 없으셨던 출판 업계 여러분들은 그 좋다는 돌가루가 듬뿍 함유된 고급 종이를 사서 책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출판되는 책들은 다소 무게가 좀 나간다.

어디서 이런 돼먹지도 못한 거짓말들을 뻔뻔하게 하고 앉아있는지 모르겠다. 첫째로 돌가루가 많이 들어간 종이가 비싼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런 종이를 굳이 써서 책 가격을 올릴 당위성은 별로 없다. 정말 인기가 많고 명저라 소문난 책들에 대해서 한정판이나 소장판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제작하면 모를까 왜 소개팅에서 잘먹히는 개그 따위의 제목을 단 책에도 그런 고급 용지를 써야하나.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일본등과 비교했을 때 우리 나라 소설의 무게는 2배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는 두껍고 무거운 종이를 쓰기도 하지만, 여백이 많고 쓸데없이 큰 판형으로 만들 기 때문이다. (설마 잉크가 졸라 무겁다는 이야기는 안하겠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내가 참 좋아하는 소설인데, 나는 중학생일 때 영화로 먼저 보았고, 고등학생일 때 이 책을 참으로 재밌게 보았다.  그리고 군제대를 했을 즈음에 이 소설이 다시 보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찾았을 때. 옛날에 봤던 두 권짜리 소설은 온데간데 없고 멋진 하드커버에 싸여진 세권짜리 소설이 있어서 나는 처음에 이게 제목이 비슷한 다른 책인줄 알았다.

3. 돈 받고 파는 게 맞나 싶은 품질들

그외에 아이폰 개발 책이 봇물터지듯 쏟아지던 시점에 멋모르고 하나 샀다가 완전 사기당한 책이 하나 있다. 이 책은 더럽게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미대생들 포트폴리오” 수준 이상의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었다. (목차를 지나 본 내용이 시작할 때 이미 100쪽이 쓰인 다음이었으며, 개발책임에도 불구하고 제공되는 소스코드는 엉망진창에 제대로 실행조차 안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소비자를 낚는 책이 일년에 도대체 몇 권이나 출판될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또, 재작년 스티브 잡스가 죽고나서 그의 자서전이 국내에도 번역되어 출판되었는데 이 때 번역 품질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을 것 같다.

적반 하장의 한국 출판업계

이런 사례들을 볼 때 소비자의 눈으로 이 사태를 보노라면 도대체 누가 유통 질서를 깽판쳐놓고서는 누구보고 뭐라 그런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심지어 무겁고 비싸게만 파는 데 재미를 들여놓은 출판 업계는 “한국인 책 안 읽는다”며 소비자들을 까대기까지 한다. (아홉시 뉴스 같은데서 1~2년에 한 번씩은 이런 기사가 나온다.)

가볍고 손에 쏙들어와서 가지고 다니기 좋고 그만큼 값도 저렴한 책이 (번역서라면 읽기좋게 잘 번역되어) 많이 나오면 나라도 출퇴근 길에 서점에 들러 하나쯤은 사서 다니면서 읽겠다. 게다가 한국 소비자님들은 무식해서 책을 안 읽는게 아니라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가면 그다지 책 읽을 생각 드는 사람 별로 없다. 책 안 읽는 한국인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이 책 읽기 어려운 환경이 출판 업계의 생존에 현실적으로 가장 큰 위협이 아닌가?

이제 이래도 저래도 온라인 서점과 경쟁이 안되니 “박리다매는 공멸을 부를 뿐”이라며 도서 정가제를 고쳐서 우리가 더 많은 돈을 벌게해 달라고 소리치고 있다. 그러면서 진짜 양아치 짓을 시작했는데, “동네 서점”들을 볼모로 잡고 내세웠다. 도서 정가제를 해야 건전한 유통망이 활성화되고 동네 중소 서점이 살아난단다.

저런 양아치 짓 이면에는 저열한 계산속이 숨겨져 있다. 한국인 책 안읽는다고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어차피 책 사는 사람은 꾸준히 산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거다. 그러니 책들이 점점 고급화되고 단가가 비싸진다. 그리고 그만큼 출판사는 이윤을 더 챙기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싸게 많이 팔기보다는 비싸게 많이 팔고 싶은거다. 그래서 신간이고 나발이고 그냥 법적으로 책은 정가 그대로 사게 하라는 거다.

그렇다면 유통 구조를 개선해서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팔 수 있는 인터넷 서점에서 이러한 혁신의 결과로 더 나은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는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정당하고 착한 정책인가?

그리고 도서 정가제를 한다고 동네 서점이 살아날까? 출판사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찍어내는 고급 양장본의 책은 왠지 박스 세트에 예쁘게 포장된 걸 비싸게 사서 받아보고 싶지, 좁은 동네 서점에서 까치발로 돌아다니면 사고 싶은 생각이 들겠냐는 말이다.

하다 못해 90년대 중후반 동네 서점들이 그나마 먹고 살만할 때 그곳에서 팔렸던 책들은 주로 잡지들이었다. 오다 가다 서점 앞을 지나다가 볼만한 잡지라도 있나 뒤적이다 한 권 들고 나오던 그런 시절. 그렇지만 그런 시절의 종말은 출판사 스스로가 불러왔다. 정기구독하면 반 값에 선물까지 주고 심지어 서점보다 하루 빨리 도착하게 넣어주거나 하는 이벤트(?)들도 먼저 하지 않았던가.

백번 양보해서 그런 출판사들이 세월이 흘러 개과천선했다고쳐도 지금 출판업계가 만들어내는 제품의 ‘하드웨어’는 동네서점이라는 문화와는 여전히 큰 격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도서 정가제가 이런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도서 정가제가 서적 유통망의 건전성을 확보하고 싸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책을 사게 되는 밑거름이 될 거라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출판업계가 놓친 것

요즘은 거의 모든 물품을 인터넷을 통해 주문할 수 있다. 심지어는 마트에 장보러가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다 집으로 배달해주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에 인터넷 쇼핑은 이러한 편리함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는데, 바로 직접 물건의 품질을 보고 비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공산품의 경우 품질이 비교적 균일하기 때문에 인터넷 거래가 활발하고 (그마나 의류의 경우에는 사이즈 이슈가 있지만 워낙의 거래 규모가 크다보니…) 식재료 같은 것들은 좀 덜한 편이라 사후 처리가 용이한 홈쇼핑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다.

특히 공산품 중에서도 제품 상태의 균일도가 무척 큰 카테고리가 있는데 바로 서적과 음반이다. 서적의 경우에는 파본이 생기는 경우도 드물게 있기는하지만 뭐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 그러다보니 인터넷으로 팔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미 오프라인 음반 유통 업계는 주저앉았다.

그런데 이 현상은 단순히 제품 특성 때문에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유통 업계가 ‘무엇을 파는가’를 몰랐기 때문이다. 음반은 단순히 CD를 파는 장사가 아니라, 음원을 유통하는 장사다. 음반 유통 업계가 망한 건 인터넷으로 CD를 사는 사람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더 이상 음악을 CD에 담아서 팔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이는 음반 기획사들은 체감하고 있는 듯 하다 최근에 쏟아지는 신규 앨범들의 자켓 디자인은 정말… 발로했냐?)

하드웨어에 목숨걸고 있는 건 출판 업계도 마찬가지다. 이미 물리적인 책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은 엄청나게 발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책과 같은 매체를 유통하려는 노력은 대체 얼마나 하셨나? 당신들이 그렇게 욕하는 인터넷 서점들이나 그런 거 만드는 데 투자하고 있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전자책 출판의 품질은 조악하기 그지없다. 전자책이 안 팔리는 건 사람들이 종이책에 대한 향수를 못 버려서가 아니라 돈주고 살만큼의 최소한의 품질을 여전히 못 만들어내기 때문이라는 거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름 “지식”을 만들어 판다는 문화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는 출판업계가 어찌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도 없이 당장 눈앞의 이익에 징징거리는 몹쓸 짓이나 하고 있는 걸 보노라면 정말이지 코웃음도 안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 뭐 도서 정가제 반대를 반대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