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여자의 남자 – 45

아내는 거의 하루 24시간을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부쩍 잠투정이 많아진 작은 사람 때문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은 아이를 재우고, 젖을 먹이는 시간에 할애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어머님이 식사며 이런 저런 것들을 챙겨주시고는 있지만 최소한의 수면조차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위기의 여자는 동시에 의지의 여자이기도 해서 -잠을 참아내는 그녀의 능력은 내가 보는 입장에서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끝까지 버텨서 항상 아이를 케어한다. 그런 와중에 작은 사람이 깊은 잠을 잘 때는 또 그 모습을 바라보느라 자기가 자야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일쑤다.

그러다보니 자기 몸 추스르는 산후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요즘 부쩍 걱정이 된다.

많은 부모들은 아기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본다고 하는데, 나는 잠든 작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 아내가 떠오른다. 아마도 내가 나 자신의 잠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아내 역시 잠든 작은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내 얼굴을 떠올릴거다. 첫딸은 아빠 닮는다고 했던가. 작은 사람은 지금도 아빠 닮았는지 엄마 닮았는지 콕 찝어내기가 힘들다. 뭐, 우리 둘이 워낙 닮은 꼴이라 -iPhoto의 얼굴 인식 기능은 요즘도 우리 얼굴을 헷갈려한다- 그런가보다.

밤은 깊어가고. 아이도 그리고 아내도 무척 많이 보고 싶다. 시간이 더디다.

위기의 여자의 남자 – 43

결혼 후 신행 때 처가에 왔을 때 이것저것 맛나는 걸 많이도 먹었지만, “불친절 할머니 호떡”의 기억은 꽤 강렬했다. 난 호떡은 물론 이렇게 길에서 파는 음식도 거의 안 먹고 다녔는데, 아무튼 이 “불친절한”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언젠가 한 번 했던 거 같은데… 오늘의 사건은 진짜 찜찜했다.

제인이 낳은 뒤로, 이 호떡을 한 번도 먹을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무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는데, 호떡을 사러 출발~

할머니는 비가 오는 날씨였지만 장사를 하고 있었고, 다만 손님은 좀 없었다.
“호떡 여섯개 포장이요”라고 말하는데 흠칫 놀랐다. 호떡 가격이 무려 500원에서 700원으로 40%나 인상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격표가 정성스럽게 제작되어 천장에 걸려있더라. 원래 이 할머니, 가격을 쉬이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써 붙여두지도 않았거든.

떫떠름하게 기다리다, 포장된 호떡을 건네시기에 돈을 드렸더니 다시 거스름돈을 주시며 “고마워요”라고 하심. 와 이 순간에 진짜 “이 할매가 어디서 약을 팔어?” 라는 대사 칠뻔.

아무튼 그렇게 집에와서 호떡을 먹기는 했는데, 아마 앞으로는 막 이렇게 먹고 싶어서 찾아가서 먹고 그러지는 않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좀 사기당한 기분이다. 아니, 어쨌거나 결론적으로는 그 할머니가 못돼먹었다는 건 입증된 건가.

위기의 여자의 남자 – 41

이런 말 쓰면 딱 딸바보 소리 듣기 좋겠지만, 어쨌든 양파 아니 제인이는 나와 아내가 늘 말하던대로 ‘아빠가 마롭이모 결혼식에 갈 수 있는’ 날에 태어나 주었다. 그 전에도 머리가 위로 와 있던 역아자세로 있던 양파는 엄마가 고양이 체조를 시작하려고 마음 먹을 때 쯤에 바른 자세로 돌아갔는데, 이때도 우리 부부는 열심히 배를 쓰다듬으며 (그렇다고 내가 내 배를 쓰다듬었다는 이야기는 아님) 양파에게 이제는 자세를 옮길 때가 되었다고 매일 매일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엄마 아빠의 바램을 들었음이 분명하다.

지난 주말 아내와 아이를 보러 처가에 다녀왔다. 아기 용품들을 잔뜩 챙겨가느라 먼 거리를 운전해서 다녀왔는데, 덕분에 이틀 내내 몰려오는 졸음과 피로에 헤롱대다가 와서 아기는 많이 보고 왔지만 정작 고생하는 아내를 많이 보고 오지는 못했다. 수유하느라, 아이가 칭얼대느라 거의 매일을 밤잠을 못 이루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참 짠하기도 했다.

늦은 밤 집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고, 주말에 찍었던 아기 사진이며 동영상들을 보다가 결혼식 때 찍은 아내의 사진을 보았다. 내킨 김에 아내의 모든 사진들을 하나 하나보다가 밤이 깊어 버렸다. 긴 말을 쓸 수는 없고, 다음 주에 다시 내려 갈 때엔 고단한 몸 잠시라도 쉬라고 무릎 베개라도 해주고, 잠든 아내 머리도 좀 쓰다듬어 주고 와야겠다.

위기의 여자의 남자 – 40

사랑한다고 말하면,

너는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두 번 말한다.

보고싶다고 말하면,

너는 보고싶다, 보고싶다, 보고싶다고 세 번 말한다.

매번 감사하는 건 나인데,

늘 너는 먼저 내게 고맙다고 말한다.

말하고 말하고 말해도 부족할 정도로

사랑하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다.

말로 채우지 못하는 마음은

마음으로 채워야겠다.

그래도 언제나

사랑하고, 고맙고 그리고 또 사랑한다.

위기의 여자의 남자 – 39

경황이 없었다. 야근 후 늦은 귀가로 겨우 잠이들 무렵에 병원에 와 있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아 어떡하지 예매해둔 기차의 출발시각은 너무 멀다. 차로 가자니 역시 너무 오래걸린다. 결국 그 새벽에 항공사 홈페이지에 접속, 항공권을 예매했다. 첫 비행기를 타려면 한 시간 내에 모든 걸 챙겨가야한다. ActiveX를 다섯 개 정도…를 여덟번 정도 설치했다. Excellence in flight가 아니라 Insanity in hompage가 더 어울리겠다.

그리고 정말 자로 잰듯이 수속도 맨마지막에, 탑승도 맨마지막에 아슬아슬하게 첫비행기를 탔다.

새벽에 이미 양수가 터진 거라, 탑승 전 마지막 통화에서 아내는 이제 곧 촉진제를 맞을거라 했고, 기내에 들어선 나는 그제서야 왠지모를 위화감이 들었다. 겁 많기로 울산 지방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내가 새벽에 양수가 터지고 병원을 가는 응급 상황에 처했는데, 그는 굉장히 차분한 목소리와 말투로 나에게 기차는 늦을 것 같으니 비행기로 오라고 그 새벽에 연락을 한 거 자체가 이상했다.

어쨌든 다행히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했고, 아내 곁에서 양파가 나올때까지 곁을 지켰다. 패닉에 빠져있지 않을까 걱정했던 바와 달리 그녀는 내 머리채를 쥐어 뜯는다든지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진통 다섯시간째. 아기는 좀 아래로 내려왔는데, 자궁 경부는 반쯤만 열렸단다. 아내의 평소 체력이나 지금까지 겪은 고초를 생각할때, (의사의 판단은 뭐가 됐든) 아내가 네다섯시간을 더 진통을 참으면, 정작 애 낳을 힘이 없을 것 같았다. 걱정이 되었지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때 아내가 데굴데굴 구르는 수준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고통에 호흡이 힘들었고, 이내 양파의 상태를 체크하는 기계에서 알람이 울렸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자궁경부가 거의 다 열렸단다. 아니나 다를까 그리고 아내는 힘을 거의 다 써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막상 의사가 도착하고 나니 그냥 낳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양반은 15분이면 나오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거의 한시간이 걸려서 결국 양파가 태어났다. 호흡법에 대해서는 이번 주 쯤 인터넷을 찾아볼 예정이었던 아내는 참으로 기특하게 호흡도 잘하고 힘도 잘 줘서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위기를 잘 극뽁~해주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갓 태어난 핏덩이를 엄마 품으로 데려와 젖을 물리는데, 그걸 보니 진정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앞으로의 인생은 지금까지와는 아주 많이 달라지고 또 때로 힘든 날이 더 많아지겠지만, 아내와 양파와 함께 지내는 나날이 그 자체로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