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기계들 – 02

삶을 바꾸는 기계들 – 02

사실 이 일련의 글들을 쓰게 된 계기는 바로 이 기계때문이다. 성격상 이 시리즈의 **”끝판 대장”**쯤 되는 것이긴한데, 사실 시리즈 전체에 대한 구상 따윈 없으니 생각난 김에 쓰는 것으로 한다. (이게 마지막 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용시의 노하우 같은 건 검색해보면 얼마든지 있으니, 여기서는 따로 다루지 않기로 한다.

삶을 바꾸는 기계들 – 02 더보기

위기의 여자의 남자 – 51

우리집 세탁기

우리는 결혼하면서 혼수에서 가전에 그다지 돈을 쓰지 않았다. 사실 돈이 별로 없어서 쓰지 못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텐데 우리의 신혼 가전 중 가장 고가의 물건은 컴퓨터였다;;;

세탁기는 원룸에 딸려있는 9kg짜리 드럼세탁기였는데 뭐 사실 이정도면 두 사람 빨래는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었고 때때로 성능에 불만은 있었지만, 어쨌든 좁은 집에 한 번에 널 수 있는 빨래량에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그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문제는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발생했는데, 일단 아기 빨래를 매일해야하는 건 하면되니까 거기까지도 참을만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서 발견되었다.

제인이가 며칠간 응가를 못해서 걱정을 살며시 할 무렵이었는데, 아마 그날 이모가 놀러오신 틈에 축적된 응가를 한 번에 한 거였다. 많은양의 응가는 이미 기저귀를 넘치고… 여튼 그래서 그때 쓰던 보송보송 이불을 그만.. ㅠㅡㅜ

그 이불이 의외로 부피가 좀 커서 아내는 이걸 빨아야한다며 겨우겨우 세탁기에 밀어넣고 문까지 닫는데 성공했지만, 세탁조에는 그야말로 모래한줌 들어갈 틈이 없었고 세탁을 마친 이불은 그저 젖은 똥이불이 되어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그 날 그 힘든 육아의 길을 헤쳐날오며 거의 울지 않았던 꿋꿋한 그녀가 전화로 목놓아 울었고, 난 퇴근하고 달려가 아직까지 따뜻한(?) 똥이불을 차에 싣고 봉천동 일대를 누벼 결국 이불빨래가 되는 세탁소에 이불을 맞기는데 성공했었다.

아무튼 그날 아내는 작은 용량의 이 구닥다리 세탁기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세탁기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었기에, 나는 이사가면 다른 건 몰라도 세탁기는 크고 좋은 거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우리가 이사를 좀 앞당긴건 오피스텔 꼭대기층에서 아기와함께 여름을 나기란 불가능할거란 생각에서였지 세탁기를 빨리 사려고했던 건 아니었다.

암튼 전세계약을 하고 나서 우리가 맨 처음 한 일은 아기을 들쳐업고 ㅎㅇ마트로 달려간 일이었다. 그 전에 아기용품사러 백화점갔다가 봐둔 모델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거기 영맨 아저씨가 아내가 치를 떠는 H세탁기를 온갖 할인 프로모션을 다 붙여주겠다고 작업이 들어오는 거였다. (이때 난 아기를 메고 매장을 빙빙 돌면서 터치식 패널로 된 모델이냐 조그 다이얼로 된 모델이냐를 생각하고 있었다. 난 전자제품을 살 땐 거의 한 두 개 선택지를 압축해놓는 편이라 그닥 선택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도 않고 용팔이멘트는 귓등으로 듣는편이다)

암튼 거기서 별 영양가 없는 소리를 듣고 나와 길 맞은편 L사 대형 대리점으로 다시 방문. 결국 선택은 처음 사려던 것(20-22kg급)보다는 좀 작은데 침구 살균 기능이 있고 하단 서랍까지 붙여서 ㅎㅇ마트의 H세탁기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마법을 보여준 직원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마술같은 할인 테크트리를 작성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대기업은 똑똑해야 들어가나보다 싶었다)

어쨌거나 아내는 세탁기를 계약(?)하고나서도 사준다니 고맙지만 우리 형편에 너무 과한 세탁기를 산 거 아니냐며 염려도 했지만(여보 그걸로 치면 우리 아이맥은;;;;) 이사 후 사용하는 세탁기는 완전 대만족이다. 물론 비싼 가전은 대부분 그 값을 하게 마련이겠지만, 전자기기 못지 않게 생활가전을 선택하는 것도 상당한 안목과 직관이 요구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아… 가전쪽에 취업할 걸 그랬나.

위기의 여자의 남자 – 50

오디션꿈나무와 적선(?)의 추억

육아로 인해 이웃에게 신경을 아니 쓴 사이에 윗층 옥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며칠 전 자정 무렵에 남의 집 문앞에 서서 한참 통화를 하길래 문을 열고 새해 인사라도 건넬까 했으나, 잠옷 바람이라 참았지.

그리고 오늘은 위층에서 낮부터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있으시다는 아내의 제보. 오디션 꿈나무로 생각되지만 안타깝게도 목소리에 공기가 없어 그닥 큰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고.

조용조용 살고 싶은데, 예전 자취할 때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에는 그 터의 기운이라는 게 있나보다. 자취하던 그 동네가 참 그랬는데. 고시촌이라는 분위기에 걸맞게 만화방이랑 피씨방이 즐비하여 정작 주택가는 조용하고 한적했다. 특히 내가 살던 건물은 마치 절간 같았다.

문제는 옆집. 내가 살던 곳은 반지하의 위층인 1.5층 쯤 되는 높이였는데 옆집 2층에 좀 제정신이 아닌 애가 살았다. 아니, 표현은 미안하지만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됐다.

밤 11~1시 사이에 규칙적으로 기타를 연주하며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다.

뭐 그 당시 소심한 나는 분란 일으키기 싫어서 그냥 저러다 말겠지했다. 같은 층에 옆방이나 사람은 많으니까. 그런데 약간 위쪽으로 나있는 그 방 창문에서 울려퍼지는 사운드는 그닥 작지 않았다… 처음에는 좀 소심한 듯 시작해서 나중에는 참 심취하시는 듯… 그런 찬송가 연습은 매일밤 이어지더니 급기야 보름 후 쯤에는 교회 형제자매님들을 모셔다가 집에서 ㅈㄹㅂㄱ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옆집에서 피아노 치고 하는 소리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초등학생들 집에와서 저녁때 좀 치면 시끄럽기는 하지만 뭐 한시간을 치는 것도 아니고 잘 애들은 밤엔 자니까.

근데 심야에 그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참다참다 못해서 소리도 질러봤으나 그 안에서 뭣들 하시는지 들리지도 않는 모양. 결국 저금통에 들어있는 10원짜리 동전을 한움쿰 꺼내서 김수미식 욕설과 함께 창문으로 투척하니 창문으로 투두두둑 소리가 나서 놀랬는지 갑자기 조용해지더라.

그뒤로 어떻게 됐냐고? 조용해지기는 커녕 며칠 뒤에 더 ㅈㄹㅂㄱ함. 자기들끼리 정성이 부족해서 그런 날벼락을 하나님이 막아주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나도 몇 백원씩 더 적선해봤지만 개선이 안돼서 답이 없다고 판단, 거의 매일 경찰에 신고했다.

결국 경찰에게 저 집 주인한테 이야기 좀 전해달라고 한 후 이사간 듯 조용해지긴 조용해졌다.

근데 문제는 그 녀석이 이사가고 나서 한동안 비어있던 그 집이 더더욱 수상한 여자가 같은 방에 이사를 왔음. 그리고 밤마다(는 아니고 역시 자주) 들려오는 야동의 사운드. -_ – 내가 알기로 당시 그 위 3층은 피아노치는 초딩 키우는 집이었는데 뭐라 한 소리 들었을 법도 한 데, 어째 그 문제의 소리는 규칙적으로 계속 남… 결국 여기도 한국말 안통하는 집인가 보다. 그나마 그래도 이 집은 빨리 나갔다. 이사온지 얼마안돼서 여자2, 남자1이 격하게 싸우고 부서지는 소리가 나서 쿨하게 경찰에 신고. 동네 아줌마들 다 구경나오고 경찰차에 다 태워갔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격하긴 격하게 싸웠나보다. 암튼 그렇게 해 to the 결.

이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자 그 집 터가 이상한지 왜 그런 애들만 이사오냐…싶었는데 돌이켜보면 한 두 번 그런 일이 있을 때 가만놔두면 그냥 그게 자연스럽게 자기의 권리가 되어 버리는 그런 문제가 된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고시촌이고 하니 시끄럽게 구는 건 당연한 민폐인데, 나중에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하면 되려 자기네의 권리를 침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 개념이 어떻게 탑재되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그런 애들 제정신차리게 만드는 방법도 그닥 궁금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들을 어떻게 종료할 것인가가 핵심이다. (내가 왜 내 시간 들여가며 그들을 타일러 사람 만들어 줘야 하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여느 인터넷 커뮤니티를 가도 층간 소음이나 옆집 개짖는 소리에 대한 고민과 도움 요청은 많지만 거의 대부분은 “원인제공자가 계속 생깜”으로 개선되는 건은 별로 없다는게 문제다.

암튼 그런 과거를 떠올려보니, 오늘의 이 오디션 꿈나무도 그냥 이대로 방치하면 안될 것 같다. 오늘 쯤엔 찾아가서 성공한 아이돌이나 가수들은 옥탑방에서 꿈을 키우기보다는 반지하에서 꿈을 키워 성공한 케이스가 많다고 꼭 말해줘야겠다. 그리고 노래 연습은 무한 보너스가 들어오는 녹두거리 초입의 뉴우리 노래방이 좋다고도 추천해줘야겠다.

위기의 여자의 남자 – 48

일주일

기러기 아닌 기러기 아빠가 되어 거의 보름에 한 번씩만 아내와 작은 사람을 만나러 가다보니, 어떤 때는 아이에게 정신이 팔려있다가 주말이 저물어 허둥지둥 돌아오게 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감기약 기운에 헤롱거리다가 어찌 오는 지도 모를 정도로 주말을 보내고 돌아오는 때도 있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서울에서 나홀로 지내면서 밥은 끼니는 거르지 않고 잘 챙겨 먹는지, 건강은 잘 챙기고 있는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을 것이며, 남편을 마음놓고 그리워할 시간도 없이 아이를 들었다 놓았다 달랬다 먹였다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 같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지만, 아내는 자기 몸 건사는 커녕 밤잠을 못자서 저 잠많던 사람이 저러다 탈이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호된 육아 생활을 견뎌내고 있다.

그런 아내인데, 아내와 아이를 보러 갈 때마다 정작 아내를 많이 챙겨주지 못하는 것 같다.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내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좋다고는 하지만, 잘 모르겠다.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에서의 마음은 아쉬움 이전에 언제나 미안함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일도 출근하는 주말이지만, 일이 끝나는대로 처가로 내려갈 생각이다. 고작 스무시간 남짓 함께 있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하겠지만,  그 스무시간은 고작 왕복 열차비에 비할 수 없는 가치가 있으니 당연히 그래야 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스무시간 동안만큼은 그녀가 마음 놓고 눈 붙이고 꿈꿀 수 있는 그런 시간을 만들어 줘야겠다.

육아에 점점 요령이 생기고 있는 것 같은 요즘이지만, 그럴수록 그녀 혼자 감당하고 있는 수많은 걱정과 염려, 그리고 수면 부족이 안쓰럽고 더 미안해진다.

지난 일주일도 참 긴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저물어 간다. 하지만 내 진짜 시간은 내일부터 시작된다.

위기의 여자의 남자 – 47

출산준비 > 출산 > 본격 육아로 이어지는 숨가쁜 스케줄 덕분에 다 빼았겼던 아내의 서울대 입구역 스타벅스 메요 탈환에 성공했다.

그런데 현대직판장 메요는 몇 일 남았는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좀 이상한 총각이 메요던데… 암튼 여기는 애니팡 50만점보다 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