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2 :: 일종의 나락, 나의 취업 이야기

간만의 휴식

뜻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요즘 좀 쉬고 있습니다. 아, 그게 일을 그만 두고 쉬고 있다는 건 아니구요, 1년 반여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빡세게 일에만 매달려 오다가, 뭐랄까 잠시 자신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개인적으로 갖기로 마음먹었다고나 할까요. 물론 휴일인 어제와 토요일까지도 코딩 작업에 열을 올려준 개발자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고생했으니 좀 쉬어봐’라고 말해 주시는 당신들은 진정 대인배 ㅠㅠb 이십니다. 어쨌든 그래서 사흘 째 원 없이 모든 걸 귀찮아 하면서 뒹굴 거렸습니다. (아 물론 그 와중에 서울에 오신 부모님도 만나뵙고 나름 바쁘긴 바빴다구요) 그리고 사람이 이렇게 잘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몇 시간 못자서 허리가 아파 일어나곤 했었는데, 요 며칠은 샤워하면서 등에 욕창 생긴 건 아닌 가 확인해야 할 정도로 잠에 빠져들어 살았다니까요.

이렇게 몇 일 푹 자고 쉬고 나니, 조금은 인생이 살만한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의 4~5년 만에 맛보는 이 여유와 게으름은 정말 달콤하군요.

이런 여유를 맛보고 있자니 몇 년 전 제가 백수로 지내던 눈물 겨운 때가 생각이 납니다. 

춥고 배고픈 시절

동기들과는 조금 다른 커리큘럼(?)을 밟았던 저로서는 졸업 논문을 3학년 때 썼고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같이 공부하던 후배들 논문 조 짤 때 같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군요), 졸업에 필요한 이수학점이 4학년을 앞두고 고작 3학점 남았던 관계로 졸업을 좀 일찍 당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조기 졸업이지만, 당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합니다. 여름에 졸업장을 받았지만 저는 계속 학교에 서식하면서 가을에 있던 학과 작품 발표회에도 2년 연속 참가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무렵까지도 그 흔한 영어 점수 하나 없던 저는 (물론 토익 시험은 3차례 가량 응시했으나, 늦잠으로 단 한 번도 친 적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취업 박람회’ 같은 곳에는 부끄러워서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 브로슈어 하나라도 집어 들어보니 모두 ‘글로벌 인재’를 부르짖고 있고, 그 미어터지는 현장에 나타난 대부분의 취업 준비생들은 그야말로 최소 1년 전부터는 박터지게 공부해서 말 그대로 취업을 준비해 온 친구들이었으니, 같이 있으려니 낮뜨거워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그 해 여름에는 국내 대기업의 자회사이자 가장 잘나가는 SNS 서비스를 가지고 있던 회사에 면접을 볼 기회가 생겼었지만, 역시나 점점 식은 땀을 흘리고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자신을 주체하지는 못했습니다. 소개해 주신 분의 말씀으로는 ‘너 정도면 눈 감고도 합격할 수 있다’라고 하셨는데, 너무나 죄송스럽게도 저는 그곳에서 면접 일정이 종료되고 선물로 나누어주던 CD-RW 한 장과 두둑한 교통비에 (실제로는 회사에서 준비한 버스로 면접장으로 이동했지만 말입니다.)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꾸벅 꾸벅 인사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 이후 대기업이라는 곳에 면접을 두 어 번 정도 더 보았습니다. 그리고 역시 ‘영어 면접’에서 보기 좋게 낙방. 생각해보니 이상할 것도 없는게 전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 듣기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못했으니, 그리 억울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후에 소위 ‘영절하’라든지 하는 곳에서 소개하는 방법으로,  카세트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듣고 또 들어보았지만 몇 개월 후 얻은 것은 동네에서 4만원 정도를 주고 구입한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가 인터넷에서는 1만 5천원 하더라는 안타까운 소식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8개월 정도를 보내고 나니, 같이 작품전을 준비하던 후배들이 졸업을 앞두고 괜찮은 직장으로 하나 둘 취업이 되어 떠나갔습니다. 그냥 마냥 어리게만 보았던 동생들이 알고 봤더니 영어 어학 연수도 기본적으로 다녀오고, 겁나게 영어 잘 하더군요. 그제서야 뭔가 잘 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게 아마 그해 연말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 졸업 학점도 그리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포트폴리오도 손에 꼽을 만큼 잘 만들었고 (그래서 그 포트폴리오는 지금 P모 브랜드에 가 있다는… 좀 돌려주세요 그거…) 나름 영어 빼고는 그래도 어디가서 빠지지 않는 인재였는데, 졸업 후 6개월이 지나자 ‘아무 것도 할 줄 아는게 없는’ 바보가 되어 있었습니다. 같이 동전 모아서 학교 식당에서 쌀밥 리필해 먹던 친구들도 모두 취업을 하고 나니, 세상에 나 혼자만 뒤쳐진채로 남아있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디자이너가 되고자 마음을 먹고 이곳 저곳의 문을 두드려 보았는데,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저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아예 뽑지도 않으시더군요. 

그래서 공부를 더 하자는 생각도 해 보았는데, 집에 불려 가서 싸대기만 맞고 올라왔습니다. 정말 안되겠다는 생각에 토익 시험을 맘 잡고 보았지만, 아뿔싸 말하기도 부끄러운 점수만 계속 나오더군요. 

벌써 5년전의 일이지만, 그 때는 정말 갑갑했습니다. 학교 간판이 너무나 부끄럽고 큰 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번듯한 대학 나와서 빌빌 거리고 있는 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고,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길거리를 걸어도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서 집 밖을 나가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간간히 있는 아르바이트 거리를 소일 거리 삼아 하면서 월세만 해결하고 근근히 살아가다가 졸업한지 8개월만에 겨우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일을 하다. 그런데, 더 춥고 배고픈 시절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그 당시에 몇 안 남은 부띠끄에서 흔히 말하는 ‘시다’ 일을 했습니다. 일을 시작했지만 사실 나아지는 건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한 달에 받는 급료는 교통비와 식비를 빼면 거의 남는 게 없었습니다. 그냥 남는게 없는 게 아니라, 88만원의 절반도 채 안되는 돈이 월급이었습니다. 그래서 일자리는 있는데, 월세를 내기 위해서 주말에는 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그 때가 어쩌면 육체적으로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는 수입을 고정지출인 ‘교통비와 식비’보다 줄이기 위해서 그냥 점심을 굶거나 컵라면으로 때우고, 주말 이틀 동안에는 한 끼만 먹는다던지, 새벽까지 늦게 일한 날에는 사우나 갔다 오라고 사우나비 주시면 그 돈은 저금하고 저렴하게 전철역 화장실에서 머리 감고 김을 모락모락 풍기면서 사무실로 돌아간다든지, 아침 7시에 출근해서 11시에 퇴근.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못잡으면 도저히 택시를 탈 수는 없었기에 터벅터벅 걸어서 다시 사무실에서 잠을 청한다는지 하는 그런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하지만, 우습게도 ‘나는 일을 한다’는 그 생각에 마음만은 편했습니다. 내일 또 욕을 바가지로 먹고 그 어떤 굴욕을 당할지 모르는 나날이었지만 말이죠. 그래도 더 이상 길을 걸으며 누군가 나에게 손가락질 한다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럴 까봐 더 빡세게 스스로를 갈구면서 일을 하기도 했었죠.

그렇게 몇 달 일을 하다가, ‘본전도 안 남는 거 괜히 움직이면 배만 고프다’는 생각에 결국은 그만 두긴 했습니다. 경제 논리로만 본다면 그 시간에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는게 훨씬 더 시간 대비 수익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드디어 봄

결국은 운빨이었는지, 일을 그만두고 거의 한 달도 채 안되어서 저는 중소 캐주얼 브랜드에 디자이너로 입사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우습게도 그 때는 3군데 가량의 업체에서 ‘우리랑 일하자’는 상황이 되어서 영광스럽게도 ‘골라서’ 입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더랬지요. 경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이 많은 남자 신입을 디자이너로 무슨 수로 뽑았냐구요? 지옥 훈련과도 같았던 ‘시다’ 생활이 이력서에 한 줄 들어가면서 생긴 차이 외에는 없습니다. 보통 디자인실에 입사하면 언니들이 주로 저보다 어리거든요. 암튼 ‘시다’ 생활에서 다져진 근성(?)으로 막내 오빠로서 지내는 시간을 나름 잘 이겨냈고, (그 때는 그런 거 보다는 그저 술이 힘들었을 뿐이지요 ㅎㅎ) 찬찬히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또 늦은 밤 시간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키보드를 잡았더니 넋두리 밖에 더 한 게 없는 것 같은 생각도 들어서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요즘은 그 때보다 더 한 취업난이 ‘취업 준비생’들의 마음 한 켠을 먹먹하게 만드는 시기이다보니, 좀 안타까운 기분도 듭니다. 저야 눈을 낮춰서 일을 했다기보다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라지만, (순전히 그 상황까지 스스로를 몰고간 건 100% 개인적인 책임이라고 봅니다.) 요즘 정부에서 말하는 ‘눈높이를 낮춰야 취업이 잘 된다’는 식의 이야기는 정말 말도 안된다고 봅니다. 그런 말이 꼭 제 귀에는 ‘눈높이를 낮추고 낮추어서 취업이 될 때까지 낮추라’는 식의 이야기는 이러한 취업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겠다는 식의 발뺌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입에 풀칠은 해야하고, 또 아시다시피 요즘이 일자리만 있다고 순순히 입에 풀칠하고 살기에도 쉽지 않다는 것은 정부나 대통령만 모르고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일자리가 필요한 입장에서는 당장에라도 뭔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니 참 제가 생각해도 답답합니다. 

뭐 지금은 그 일도 그만두고 IT 쪽에 일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경력에서 중요한 건 ‘무슨 일을 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했다’는 게 면접을 보는 입장에서는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회사에서도 경력은 그리 오래지 않았지만, (역시나 운빨인가) 이제 같이 일할 사람을 뽑고 면접을 보는 일도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이 글의 2편에서는 ‘신입 취업 준비생’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나 뭐 그런 따위의 글을 써 볼까합니다. 물론 굉장히 주관적인 내용이라서 얼마나 공감이 가고 또 도움이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