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18 :: 그 용역이라는 말, 쓰기 전에 한 번 생각해보죠.

소름 돋는 현실입니다. 포탈 사이트와 티비만 접하고 사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겠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아비규환입니다. 약자들은 삶의 끝자락으로 내몰리고 그 벼랑같은 현실에서 또 한 번 무참히 폭력에 짓밟힙니다.

이러한 현실이, 트위터가 아닌 공간에서는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 현실이 더 욕지기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런데, 그 트위터의 타임라인에서 마저 뜨악할만한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어처구니가 없지요.

바로 “용역”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용역은 경제학에서 유형의 상품인 재화와 구분되는 무형의 노무를 말합니다. 위키피디아에서는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지요.

서비스(Service) 또는 용역(用役)은 물질적 재화 이외의 생산이나 소비에 관련한 모든 경제활동을 일컫는다. 복무(服務)라는 용어도 통용한다. 상품을 빼고서 교사의 수업, 이발사의 이발, 일용직근로자들의 일 따위가 용역에 속한다. 대개 용역은 개인이 남을 위하여 일하는 행위를 뜻[1]하지만 경제학에서도 토지·자본·노동이라는 각 생산요소나 정부가 무엇인가를 생산하거나 혹은 일상 생활을 위한 인간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하는 일련의 행동을 포함한다.

1970년대를 포함하여 한때 “서어비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표준으로 쓰이지 않는다. 써비스 또한 잘못 쓰이는 표현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서비스” 항목

그런데 한진중공업이나 명동 카페 마리의 일에서도 이들 ‘용역’이 등장합니다. 과연 이들이 경제적으로 제공하는 그 ‘용역’이 무엇이길래, 이들을 용역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폭력

바로 폭력입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혹은 점잖게 보이려고 “용역”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 분들이 많은데, 용역이라는 말을 이런 데 사용하는 것은 “돈주고 폭력을 사는 행위 역시 정당한 경제행위”라는 무언의 암시와 같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들은 경찰복과 비슷한 남색의 유니폼을 착용하는 일도 있는데, 덕분에 ‘용역’이라는 말로 불리는 이들이 “부족한 경찰력을 보충하기 위해 일하는 정의감 넘치는 청년들”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러면서 되려 두들겨 맞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약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게 되는 겁니다. [1. 물론 이런 생각의 프레임에는 어린 시절 지구를 지키는 정의의 용사는 대부분 정부의 지원을 받는 정부의 편이라는 뭐 그런 설정들과 다분히 파시즘적인 흑백논리가 한 몫합니다.]

돈을 주고 폭력을 이용하는 사회

이 “용역”이라는 말은 다름아니라 돈을 주고 폭력을 “이용”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묵시적인 인정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권이 어쩌고를 부르짖기 전에 이 더러운 현실을 그딴 고상한척하는 말로 가리지 말란 말입니다. 언론에 종사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합법적인 척 회사의 이름으로 돈을 받고 폭력을 제공하는 집단. 그건 깡패 양아치에 다름 없습니다. 언론에서도 ‘폭력배’라는 말은 상스럽지 않은 말로 용인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