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29 :: 이적 “그대랑 2010년 투어” 관람기

얼마전 4집 앨범을 발매하고 활동을 재개한 이적님의 콘서트를 다녀왔습니다. 장소는 신촌 연세대학교 대강당. 날씨도 춥고, 해떨어진 시간에 한강 이북을 건너가는 것도 참 오래만이고 해서, “다음부터는 꼭 모교에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연세대학교 대강당은 크고 작은 콘서트나 강연 장소로 자주 등장하는 것 같군요. 신촌역에서 택시를 타니 기사분께서 “오늘도 무슨 공연있나봐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나름 데뷔 16년차 중견가수(?)라 그런지 나이대가 좀 있으신 기사분께서도 이적이라고하니 아시더군요.

그러고보니 이적 이적 공연은 개인적으로는 참 오랜만에 가 보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 물론 공연 바로 전 주에 네이버 뮤직에서 진행한 ‘이적과 함께하는 음악감상회’에 당첨되어 다녀온 바도 있지요. 남산에 있는 카페 화수목에서 이적의 새 음반 ‘사랑’의 수록곡들을 만든 이의 소개와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걸 들으면서 하나 하나 감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공연에서는 새 앨범의 노래들을 모두 부르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음악 행보의 중간 결산

이번 공연은 아티스트 이적의 중간 결산이라는 성격이 짙었습니다. 대게 새 앨범이 나오고 투어를 시작하면 새 앨범에 실린 노래들 위주로 무대를 꾸미기 마련인데, 새 앨범 노래들보다는 지난 노래들 위주의 무대가 많았습니다. 개인 공연 자체가 참 오랜만이기도 하고, 이적 스스로도 이번 앨범은 전작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솔로 앨범들과 패닉 시절의 노래들, 카니발 때 노래들 심지어는 긱스의 “짝사랑”까지 무대에 올려졌으니 이적 음악의 종합 선물 셋트와 같은 느낌입니다.

지난 번 음악감상회에서도 오랜 팬들과 함께 앨범 뒤에 숨은 제작 과정과 관련된 이야기들, 그리고 이적 자신의 음악 세계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성격이 짙었는데, 두 행사의 시간적 간극이 짧아서 인지 공연의 성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패닉 시절에서부터 사랑과 관심을 쏟아온 팬들이라면 좋아할만한 오래전 노래들을 곱씹어보고, (여느 공연이 그러하듯이) 다함께 즐기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 속 작가적 연출

패닉에서 카니발까지 공연이 잘 짜맞춰진 스토리에 의해 연극처럼 구성되었다면, 긱스 시절 이후로 이적의 공연은 무대를 누비며 보다 현장감 있게 진행되는 방식으로 많이 바뀐 것도 사실입니다. 긱스의 다른 멤버들의 공연 혹은 긱스 공연 자체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막과 막이 구분되는 학예회적 구성 자체가 꽤나 열 없게 느껴질수도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 번 공연은 앨범을 구성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에서 서로 다른 느낌으로 출발한 노래들이 하나씩 짜맞춰지면서 이야기를 구성한 이 번 앨범과 유사하게, 오랜 시간동안 음악가 이적이 만들어온 노래들을 한데 묶어보기도 하고 또 펼쳐보이기도 하는 구성은 끊김없이 이어지면서도 그 스스로의 대하 드라마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고나 할까요. 공연 자체가 ‘올드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걸 가정한다면 이런 연출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 몇 아쉬운 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번 공연이 100점짜리였던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음향의 퀄리티였는데요. 공연장 자체가 가지는 한계점을 감안하더라도, 저 같은 막귀에게까지 거슬릴 정도로 뭉게지는 일부 소리들과 음의 품질 자체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공연 첫 날에는 무대 양측에 설치된 대형 스피커가 끝자락에 앉은 관객들의 시야를 가리기도 해 지적이 일었다고도 하는데, 어쨌거나 이적 정도의 레벨에서 공연 시 음향 품질이 이 정도 수준이었다는 점은 많이 아쉽습니다.

공연 세션의 선정에 있어서도 조금은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원래 평소에도 작업하는 세션들이라면 굳이 뭐라할만한 선정은 아니겠지요. 물론 세션을 맡으신 멤버 개개인의 역량에는 뭐라 평을 할 처지가 못됩니다만, 키보드를 맡은 남메아리양의 포스가 포스인지라, 대부분의 세션분들은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 이번 공연에서 그녀의 현란한(?) 손사위를 경험하는 것은 블루노트2.0 공연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평가로 그녀는 자신의 트위터에 언급한 바와 같이 정말 거장이 될 거 같습니다.)

앞으로…

음악 감상회때 이적씨는 대충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자신의 새 앨범 마지막 수록곡 “이상해”와 같은 노래는 앨범이 아니면 만들어질 수가 없었을 거라고요. 음원 유통 자체가 인터넷으로 옮겨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며 이를 거부할 수는 없지만, 개별 음원 위주의 판매가 가능한 이와 같은 시장에서는 개개의 아이템이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가지는 ‘센’ 노래들 위주로 음반 시장이 재편될 것이라구요. 그래서 ‘이상해’와 같은 이런 노래들은 만들기도 애메할 것이라고, 그래서 자신의 다음 번 앨범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자신도 궁금하다고 하더군요.

분명 한 벌의 ‘앨범’으로서의 음반은 여러 곡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개개의 노래가 주지 못하는 총체적인 정서를 전달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음반 유통의 모델이 변화함에 따라서 앨범이 사라질거라기보다는 또다른 형태의 앨범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물리적 매체’가 갖는 한계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시도들이나 그 속에 담기기 어려워 빛을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음악가로서의 이적이 소녀시대와 경쟁하게 되는 것이 현재의 음원 유통 시스템입니다만, 여전히 그는 ‘콘텐트 파워’를 이해하고 있는 아티스트이며, 또 그러한 역량을 지금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간 남들과 다른 그 만의 매력이 가득한 음악을 들려준 이야기꾼 이적은 아마도 다음 앨범에는 또 뭔가 깜짝 놀랄만한 것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줄 고민을 아마 지금쯤은 하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