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reframe

20100523 :: 무엇이 당신을 애플빠로 만드는가?

애플,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과를 좋아해서 어머니는 늘 과수원집 딸한테 장가보내야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긴 했습니다.[1. 혹시 시골에서 부모님이 과수원 농사하시는 미혼 여성 분은 제게 따로 메일을.. 사과 농사 우대]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플을 그리 사랑하는 건 아니었더랬죠. 어쨌거나 애플은 단순히 무식한 사무용 기기와 같았던 컴퓨터의 디자인을 혁신적으로 바꾸는데 일조를 하였고, 경쟁사들과의 중요한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애플의 이런 ‘예쁜 디자인’이 타 메이커들의 디자인에도 영향을 준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하지만 타 메이커들은 그저 제품의 외관 프레임을 예쁘게 만드는데 집중했다면, 애플은 PC를 말 그대로 개인용 컴퓨터로 사용하기 쉽게 제조의 철학을 이미 90년대 후반에 정립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아이팟이나 아이폰의 디자인에서 하드웨어적인 디자인은 그리 만족스러운 편은 아닙니다. (물론 충분히 이쁘긴 합니다만) 처음 아이폰을 손에 쥐었을 때의 그 중량감과 그에 비해 좀 어색한 그립은 ‘야, 이거 떨어뜨리면 대박나겠다’는 생각이 절로 나도록 불안하기 그지 없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파워맥 G4의 디자인이 애플이 그간 만든 제품 디자인 중 최고이자, 역사상 궁극의 PC 디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것이 바로 궁극의 디자인

사연이야 어쨌거나 아이폰을 사용한지 거의 3주가 조금 지났습니다. 주위 지인 분들은 ‘출시 시점에 물류 창고가서 받아왔을 줄 알았다’, ‘해킹폰/순정폰으로 2개는 쓰고 있을 줄 알았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이렇게 늦게” 아이폰을 산 것을 두고 좀 의외라는 반응이더군요. 뭐 저도 딱히 아이폰을 사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핸드폰을 바꾸는 당시에는 통신사, 그리고 요금등등을 따져서 아이폰으로 가는게 낫다는 판단이 섰었고 그래서 실행도 재빨랐던 거 같네요. 아마 제가 태어나서 결심 > 신청서작성 > 기존폰해지 > 아이폰개통에 불과 스무시간이 걸리지 않고 신속하게 일이 마무리 된 건 처음인 듯 합니다.
그리고 제 예언(?)[2. 넥서스원 국내 출시 불투명이란 말에 ‘내가 사고 나면 바로 나올거라니까’라고 했었더랬죠. 어쨌거나 적중]은 보란 듯이 적중하여 제가 아이폰을 구매하자마자 SKT에서는 디자이어가 출시되었고, 넥서스원 역시 KT에 의해 전파 인증을 마친 상태입니다. 이미 디자이어는 꽤 많은 분들이 고대하고 밤잠을 설치다가 구매를 하였고, 저도 개통된 실물 폰을 만져 보고 아이폰과 비교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언제나 버킹검. 아니, 아이폰이 짱 먹겠구나. 그리고 아이폰 4세대가 나오면 더 대박이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애플은 사용자를 통제하는가

구글 팬의 입장에서 아이폰을 바라볼 때 가장 답답하게 생각되는 부분 중 하나는, ‘모두 똑같을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락는 겨우 잠금화면의 배경 그림을 바꿀 수 있는 것 정도일 뿐 누구의 아이폰을 꺼내어보든 모두 똑같은 화면을 보게 되기 일쑤이지요. 해킹 아이폰에서는 좀 더 많이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해킹은 그닥 해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유니포멀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 때문에 애플 혹은 애플의 아이폰은 사용자를 통제한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상 그렇습니다. 아이폰으로는 상당히 많은 장난(?)을 해볼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엄청나게 방대한 앱스토어의 어플들을 통해 가능한 것이지 아이폰 그 자체로는 개발자가 아닌 이상, 일반 사용자 위치에서는 그닥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사용자 인터페이스 자체가 매우 단순하게 설계되어 있고, 프로세스의 흐름 역시 단방향에 가깝기 때문에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수단으로 보입니다. 제 경우에는 대부분의 기능이나 설정을 파악하는대는 이틀 가량이 걸렸고, 물론 그 사이에 어플을 구매하거나 다운로드 받고, 삭제하고, 메일 계정과 주소록을 구글과 연동하는 작업은 아이폰을 활성화한 당일날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것은 명료하고 또 익숙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아이폰은 하루 이틀 정도만 사용해보면, 그 다음부터는 어플만 잘 골라서 설치하면 정말 재밌는 장난감이 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전 부모님께도 다음 핸드폰은 아이폰으로 바꾸시라고 강력하게 권해드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애플은 사용자를 통제하는 것일까요. 일견 그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실제 사용자들이 ‘통제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지 않는가 싶습니다.
아이폰의 사용자는 아마도 대부분 자신이 통제당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되려 기존 피쳐폰 사용자들의 경우는 어떤가요? SKT 사용자라면 이쁘지도 않고 구동 퍼포먼스 역시 최악인 통합 메시지함 어플을 강제로 사용해야 합니다.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는 제한되어 있으며, 무선 인터넷은 무조건 가입한 통신사의 모바일 포털을 강제로 사용해야 합니다. 다운로드 받아서 사용해야 하는 어플리케이션들은 고작 게임 하나에 3~4천원씩 주고 사야하고, 패킷 요금 역시 얼마를 쓰면 얼마나 돈을 내는지에 대한 아무런 감도 잡지 못하고 고지서 걱정을 마음 한 켠에 쌓아두고 써야 합니다. 통제당한다면 이런게 통제겠지요.
이이폰은 좀 다릅니다. 아니, 좀 다릅디다. 정작 사용자 입장에서는 되려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택배로 배달된 아이폰을 받아, 패키지를 개봉하는 그 순간부터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작게는 USIM 칩 넣을 때 쓰라고 설명서 봉투에 클립을 넣어두는 센스에서 시작해서 깔끔하게 배치된 액세서리들까지 좀 짱인데 싶은 생각을 들게 합니다. 보통은 핸드폰을 사면 알맹이만 쏙 챙기고 껍데기는 모두 그 자리에서 버리고 오기 마련인데, 저도 아이폰 케이스는 지금도 잘 모셔두고(?) 있습니다. 아이폰을 다시 봉인할 일은 없겠지만 왠지 버리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 하드웨어, 꼼꼼하고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소프트웨어

아이폰은 고작 600MHz 에서 동작하는 CPU를 탑재하고 있으면서도 대단히 놀라운 터치 반응과 화면 반응을 보입니다. 아이폰을 한 일주일 정도 쓰면 은행 ATM 기기의 터치스크린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정도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정전식 터치 스크린과 감압식 터치 스크린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터치의 감도나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화면 스크롤 등이 반응하는 것은 멀티 터치의 가능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대단히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고 또 유연하게 반응합니다. 실제 1GHz의 스냅드래곤 CPU를 자랑하는 디자이어의 경우에도 아이폰 만큼의 반응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내부적으로 어플리케이션이 동작하는 속도는 훨씬 빠르겠지요) 하지만 스마트폰을 PC와 같이 매우 heavy한 작업을 하는데 사용할 것이 아니라면 전체적인 아이폰의 퍼포먼스는 매우 만족스러우며, 하드웨어 스펙 대비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직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를 만져보지는 못해서 이들과 비교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일 것이므로 디자이어의 그것과 대동소이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전에 옴니아와의 비교는… 안하는게 나을텐데 왜 굳이 삼성전자는 옴니아를 출시하면서 아이폰을 들먹여서 제 무덤을 팠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OS를 포함한 하드웨어 제품 자체는 공산품이 아닌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명품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3. OS를 하드웨어에 포함시켜서 통칭하는 것은 엄밀히 틀린 표현입니다만, 어플리케이션 레벨에서 최적화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튜닝의 상태를 포함한 개념으로 생각했을 때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게다가 Home 버튼을 제외하고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버튼은 거의 없습니다. (전원 버튼과 음량 조절 버튼이 있습니다만, 누가 임의로 음량을 키워 놓은 경우가 아니면 쓸 일이 없더군요.) 덕분에 사용자는 화면 상에 그려진 UI 요소를 두드리고 누르고 끄는 것으로 모든 조작이 가능합니다. 물론 좀 오래 누르고 있거나, 간 혹 세손가락을 쓰거나 하는 등의 고급기술(?)도 있습니다만, 일상적인 사용에서는 이 것으로 모든 조작이 가능합니다. HTC 디자이어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Back 버튼이 화면 외부에 존재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당혹스럽게 느껴졌었는데, 이는 개인적인 편차가 있을 수 있을 듯 합니다. 디자이어에서는 모든 화면에서 Back 버튼이 외부에 고정된 그 곳에 항상 있을테니까요.
사용자 인터렉션에 있어서 공통적인 요소들은 거의 대부분 동일한 위치에 고정되어 있고, 시스템이 제공하는 UI요소가 제한적이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표준UI가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어플들은 레이아웃에 있어서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체계 자체를 매우 세심하게 잘 구성해 놓은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떤 천재 디자이너나 아키텍트가 한 방에 만들어낸 것은 아닐테고 치열한 고민과 실험, 그리고 퀄리티를 맞추기 위한 많은 논쟁과 토론이 거듭되었을테지요. 국내 메이커들이 기존에 피쳐폰으로 장사 잘 하고 있다가, 이제 아이폰과 상대하려면… 보통의 노력만으로는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은 여기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삼성이든 엘지든 임원급들은 하나씩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거나 써보기는 하셨을텐데, 아마 이런 제품 만드려면 회사가 바뀌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들.. 다들 하셨겠지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카피는 국내 자동차 아니면 가전 메이커에서 사용한 말입니다. 비단 아이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애플의 제품들에는 이러한 작은 차이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물론 이 들 중 많은 부분은 그다지 크리티컬 하지 않습니다. 맥 북을 책상위에 올려 두었다가 전원 케이블이 발에 걸리면 케이블만 쑥 빠진다거나, 아이폰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던 중 갑자기 이어폰을 빼버리면 스피커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들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그저, ‘아 저런 아이디어를 적용했구나’하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게다가 모든 애플의 사용자들이 이런 ‘세세한 차이’를 체험할 이벤트를 겪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사용하던 중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된다면, 사용자는 세세한 배려에 감동하고 마치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4. 꼭 애플만 이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수년 전 밤샘 작업 중 갑자기 인터넷이 불통인 상황이 생겼었고, 새벽4시가 넘은 시간에 혹시나 하고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상담원 아가씨가 해맑은 목소리로 저를 반기며 ‘급하실 텐데 얼마나 불편하시겠냐’며 송구스러워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답답하던 마음이 한결 풀어지고 되려 고맙기 까지 하더군요.]
이런 사소한 경험의 차이들이 사용자를 ‘빠’로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아닐까요. 애플의 원래 사명은 “Apple Computer Inc.”였습니다만 언젠가부터 애플은 Computer라는 단어를 슬그머니 빼 버렸습니다. 그것은 단지 애플이 mp3나 핸드폰, TV와 같은 가전기기를 대놓고 만들 종합 가전 회사로의 변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중심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자체적인 철학을 확립한 결과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패키지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크지 않고 콤팩트한 포장속에 뚜껑을 열면 비닐에 싸여진 미니멀한 기기. 그저 소문으로 아이폰의 정체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요. 그리고 아마 패키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 때의 두근거림이 기분좋은 경험으로 각인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우리 나라 기업은 아이폰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전에, 우리는 다른 질문을 먼저 해 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과연 우리 나라에는 ‘돈을 지불하고 난 이후의 고객을 위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요?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