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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8 :: 이건 뭐 진짜 병신도 아니고…

어이가 없는 하룹니다. 다름 아니라 42개(미만으로 추정되는) 대학의 총학생회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문도 내걸고 사진도 찍고 쇼를 했더군요. 이건 실망을 넘어서서 그냥 멍하니 넋을 잃게 만들만큼 기똥찬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이번에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꼭 되어서 남들 다 공부할 때 공부 안하고 놀다가 암울한 지방대생이 된 이들의 마지막 몸부림을 대운하 공사판에서 흙짐지고서 끝낼 수 있도록 (아마 그중의 절반은 그래도 비 정규직이겠지만요) 살짝 기원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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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청년 실업 문제 극도로 심각한 것도 사실이지요. 아들 딸 낳아서 건강하게 키워서 공부시키고 대학까지 보냈는데, 이젠 또 취업때문에 속을 썩고 계시는 이 땅의 부모님들은 근심에 주름살과 다크 서클이 가실 날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든 요즘이라지만 드라마의 주인공이 현실로 뛰쳐나왔다고 믿는 것인지 경제 대통령 운운하는 찬송가 가사 수준의 선언문도 역겹지만 더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적지 않은 돈을 들여서 대학공부까지 한다는 친구들의 의식 수준입니다. 이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가에 X맨 놀이 번지는 것인가

왜 이들은 개인적인 지지(드라마 팬덤이든, 종교적 이유든, 집안에서 시켰든 간에)를 학교의 이름을 걸고 하느냐는 것이지요. 어쩌면 이들의 행태는 서울 시민과는 아무런 상의 없이 서울시를 봉헌해버린 이명박 후보의 그것을 그리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이들도 어린 나이에 뒤가 구린 구석이 많은 차세대 비리 주자들이라고 간주해도, 설마 실례가 되지는 않겠지요. 요즘 대학가 학생회 선거가 한창이던데, 대학가 선거는 워낙에 낮은 관심속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우리 꼬꼬마 대학생 친구들 이번에는 눈에 불좀키고서 투표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렇다면 낮은 학생회 선거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까?)
말씀드렸다시피 요즘의 대학가는 꽤 살벌합니다. 취업스펙을 맞추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이 입학과 동시에 벌어지더군요. 학점관리는 물론 영어 점수도 확보해야하고 다양한 인턴쉽에도 지원하여 경험과 실력을 쌓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살랑살랑 봄바람에 날리는 시폰 스커트를 입은 여대생과의 풋풋한 로맨스 같은 건 서랍 속에 잠시 넣어두어야 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요즘 학생들의 취업 스트레스는 무시무시합니다. (물론, 그래도 술먹고 밤길에 자빠진 학생들도 많기는 많더군요. 예전만은 못하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제가 대학을 다니던 기간 동안에만 해도 학생회 선거는 해당하는 친구들에게는 꽤나 힘겨운 행사였습니다. 투표율이 거의 바닥을 기다 못해 지하로 뚫고 들어갈 정도였으니까요. 어찌보면 대학의 총학생회란 것은 저멀리 태평양 군도의 키리바시 공화국 프로야구 결승전처럼1) 머나먼 그들만의 리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학생회장이라는 친구들은 학생회장으로서의 소명의식이 과도했던 탓인지 아니면 평소에 ‘짐은 곧 국가’라는 태양왕 루이14세 위인전을 품에 끼고 살았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실제 학생들의 의견은 당연히 술자리에서 옆자리에 앉은 자기 친구들 말고는 물어봤을리 없는 그들이 멋대로 학교의 이름을 걸고 그런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아니, 아 학교 입장에서는 학생 하나가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한 경우이니 참으로 당혹스러울 것이며 훗날 이런 사건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모르고 해당 학교를 졸업한 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졸업생들은 또 얼마나 부끄럽고 쪽팔릴 일입니까? 최근 한나라당의 ‘마이크’들이 X맨 놀이에 심취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본 거 같은데, 이게 정치권에 큰 유행이 되었나봅니다. 정치권을 어깨너머로만 넘보고 있는 대학생들의 필수 교양 덕목으로 자리 잡았군요.

역시 뭔가 하기는 하는 한나라당

그러다 점심을 먹고 나서 뭔가 재밌는 기사를 하나 또 발견했습니다. 강원대와 한국 폴리텍대학 소속의 일부 대학 총학측에서 ‘뭔소리냐. 우린 그런거 몰라’라고 반박하는 주장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한나라당은 뭔가 달라도 다릅니다. 의식 저 깊은 한쪽 귀퉁이에서 ‘설마’ 싶었던 기대를 다이렉트로 만족시켜줍니다. 그러다 상황이 이쯤되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한나라당은 단 몇시간 분량의 이 짜증나는 저질 코미디극을 야심차게 내놓았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한나라당의 ‘국민 대다수의 수준’을 어느 정도라고 파악하고 있는가에 대한 그림이 대충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한나라당이 여지껏 그렇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살리고 살릴 수 있었던 원동력. 그것은 바로 국민이었습니다. 국민의 무지와 국민들의 무관심과 언론에 쉬이 현혹되는 단순함. 그것이 여태껏 한나라당을 키워온 자양분이었으며, 한나라당은 또 한번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그들의 밥그릇을 기름 잘잘 흐르는 햇밥으로 채워보려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이번 학생회장 논란에서 그러한 점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기사도 눈길을 끄는 군요

간호조무사, 이명박 후보 공식 지지표명 MD19014836 2007.11.27 (화) 오후 6:12 | 머니투데이

뭐, 이분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없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간호조무사 연합에서 이렇게 나온다는 건 반전 중의 반전입니다. 이 분들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매우 애매한 위치에서 일을 하고 계시고, 뿐만 아니라 간호사와는 전혀 다른 병원내의 위치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고 계시지요. 간호대학을 다시 들어가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간호조무사가 간호사가 되기도 힘듭니다. (간호사는 ‘면허’ 제도입니다.) 게다가 복지 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의료계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입니다. 한나라당 대성 공약 같은 건 별로 읽어보신 바가 없고 기타 홍보자료들만 접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나라당 집권시에는 복지 정책은 다른 정책에 비해 홀대받을 가능성이 높고, 의료보험료가 크게 인상되든지 아니면 병원비가 크게 인상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덕분에 병원들은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원할 수도 있고 그에 대한 파장은 고스란히 간호조무사들이 입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약간의 가능성을 가진 시나리오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말이죠)

진짜 국민들을 병신으로 아는 건지

어젠가 김근태 신당 공동선대위원장이 ‘국민이 노망’ 발언으로 진땀 좀 뺐다고 이야기들었습니다. 그런데 국민을 병신으로 알고 있는 집단들도 있으니 오늘은 한시름 놓고 발 뻗고 주무시겠군요. 그런데 이런 웃지 못할 코미디 뒤에 씁쓸함과 오롯한 분노감이 남는 것은 단지 저런 지X 옆차기 같은 해프닝에도 그들이 의도한 대로 생각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울 지 그것도 걱정인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웁니다.
1) 키리바시 공화국에는 프로야구 리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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