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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만 남은 한옥 마을에 대한 아쉬움

전주 한옥 마을을 당일로 다녀왔다. 사실 전주한옥마을 탐방!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떠난 건 아니고 아침 일찍 일어나 차에 기름을 채워넣은 김에 맛난 걸 먹고 오자…라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전주의 맛집에서 먹는 맛난 식사를 먹고 싶었을뿐이고… 휴가 떠나는 차들이 아직은 고속도로에 많지 않아 빨리 가면 점심 식사를 전주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떠나는 장거리운전이라 운전사람의 입장에서도 무척 설레는 일이었는데, 중간에 조금 막히는 구간은 있었지만 논산즈음에서부터는 거의 차도 없는 도로를 신나게 달려 점심 때에 즈음해서는 전주 시내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인의 소개로 찾은 (사실 찾기도 힘든) 조그만 식당에서 고추장불고기와 대구탕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음 남도의 식탁은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느꼈다. 회사 앞 식당에서 먹듯이 플라스틱 접시에 담겨 나오는 작은 식당에서 어쩜 그리 하나 같이 깔끔하고 맛있기만 한지. 역시 국내 여행은 맛 기행이 최고구나 하는 걸 느꼈다.
점심을 먹은 이후에는 그래도 전주에 왔으니 한옥마을을 가봐야하지 않겠나 싶어서 한옥마을로 이동했다. 그리고 느낀 한옥마을의 감상은…
실망 그 자체였다.
물론 한옥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한옥의 우수성 어쩌구하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봤지만 실제로 한옥에 살아본 적은 없어서 어떤지 모르겠다. 아무튼 올 여름같이 무더운 여름에 시원하면 또 얼마나 시원하겠냐만, 전주 한옥 마을은 오래 전부터 한옥을 짓고 사람이 살았던 흔적보다는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새로 지은 것 같은 깔끔하게 디자인된 한옥들이 많이 있었다. 거리에 특색 있는 공예품 (단순히 관광지에서 파는 공예품 말고 꽤 예쁜 것들도 있었다.) 이나 카페같은 것들이 삼청동을 벤치마킹했구나 하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만큼 -_-; 문화의 거리라고 부르짖는 것 같은 느낌을 주더라.
그래서 그 속을 걷고 있노라면, 그냥 “유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린 파주 영어 마을을 걷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인위적인 느낌이 너무 강한데다 한옥의 매력이라 할 수 있는 고즈넉함, 여유…. 이런 요소들은 별로 찾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한옥 마을 외곽에서 성당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오래된 양옥집들이 훨씬 정감가고 운치있어 보였다.
결국 전주 한옥 마을은 그 자체로는 너무나 빈약한 컨텐츠였다. 한 채, 두 채 정도만 보면 더 이상 볼 게 없는 한옥들. 집이라기보다는 전시관 같은 느낌이라 제대로된 한옥을 봤다는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이 득실 득실 많았던 것은 아무래도 전주에는 이것 저것 맛난 먹을 거리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한옥 마을을 짓는 지자체가 많다고 하더라. 한옥은 고층으로 지을 수도 없기 때문에 용적률도 낮은데, 짓는 비용은 상당히 많이 들기 때문에 그렇게 조성되는 한옥 마을이 서민들의 보금자리가 될 확률은 극히 낮아보인다. 결국 지자체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조성한 한옥 마을을 어떻게든 관광 컨텐츠로 만들어서 세수입을 늘려보고자 하는 심산이 있겠지만, 정말 쉽지 않을 거다. 똑같기만 한 조립식 한옥이 전통적인 건축 방식이나 자재를 사용한 한옥에 비해서 얼마나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줄지도 확인되지 않은 것 같고, 시간이 꽤 오래 지나기전에는 놀이동산의 성 같은 쌈마이 느낌 또한 금방 가시기 힘들 것 같다.
물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컨텐츠를 발굴하고 그것을 다시 가치있게 디자인하는 작업은 쉽지 만은 않겠지만, 그러한 노력없이 단순히 한옥 마을이 있으니까 우리 고장을 찾아주세요~하는 건 너무 어리석은 거 아닐까. 무분별하게 ‘한옥이 요즘 인기라니까, 지어두면 관광객도 오고 돈이 될 거야’라고 시작하는 한옥 마을 조성 사업은 십중팔구 한옥에 대한 안 좋은 인상만 남기는 선례로 남을 것 같다.
껍데기만 번드르르하게, 간판의 서체만 멋스럽게 꾸민 그런 “디자인”된 한옥 마을을 보고 나니, 공원이라면서 사람들이 앉아 그늘도 피하고 쉴 곳도 제대로 없이 “디자인된” 북서울 꿈의 숲을 보는 것 마냥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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