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프리퀄과 정교한 리부트 사이
하긴, 올 여름 이 영화를 본 사람 중에서는 오리지널 ‘혹성 탈출’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아 그러니까 팀 버튼이 만든 “혹성 탈출”말고 68년도엔가 만들어진 최초의 혹성 탈출. 아주 오래 전에 나온 혹성탈출은 그 충격적인 결말로 엄청난 반향과 인기를 불러 모았고 그 뒤로 헐리우드 특유의 속편 말아먹기 스킬이 제대로 시전되어 망작에 가까운 시리즈가 계속해서 나왔었다. 4편인가까지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악동 팀버튼에 의해서도 한 번 리메이크가 되었다. 그런데 이 리메이크는 이 영화를 시리즈로 끌고 나갈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기에 완전히 독립적인 구조를 가지는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어쨌거나 이 영화는 오리지널과 팀버튼 버전이 이야기하고 있는 “왜 지구가 원숭이들의 행성이 되었는가”라는 시작점을 재구성하는 프리퀄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첫 번째로 이 영화는 그러면 어떤 영화의 프리퀄을 맞이할까? 아마 팀버튼 버전의 혹성 탈출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팀버튼은 원숭이 혹성의 시조를 다른 녀석으로 이미 등장시킨 바 있고, 그 녀석은 이름도 ‘시저’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오리지널 혹성 탈출의 프리퀄일까? 그것도 아마 아닐거다. 왜냐면 그 때는 지구가 핵으로 멸망했었거든. 하지만 사실 이 부분은 상관이 없다. 왜냐면 오리지널 자체가 너무나 오래되었을 것이고… 심지어 원작 혹성탈출의 후속편은 계속해서 왜 지구가 원숭이들의 손에 넘어갔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내용들이었다. 이 영화가 암시하는 결말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혼란의 와중에 핵이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할 수가 있는 것이겠지. 아무튼 오리지널 자체가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꽤 똑똑한 프리퀄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영화는 원작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뒤집어 나가는 새로운 시리즈의 리부트 일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든다. 극 중에 실종된 우주선에 대한 언급이 아주 잠깐 지나가는 부분부터 시작해서 엄청나게 깨알같은 떡밥들을 잔뜩 던져두고 있다는 것이다. 원작의 내용을 아마 많이 알면 알 수록 그런 걸 발견하게 될 것 같은데, 도입부에 등장하는 Bright Eyes는 원작에서 원숭이들이 인간에게 붙인 이름 중 하나다. 그러나 그런 떡밥들이 원작 혹성 탈출과 이 영화의 연계점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연결 고리가 될 것 같은 요소들을 사방에 포진한 채로 그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호한 기억의 파편과 충격에 관한 추억을 미끼로 하는 단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모양새가 워낙에 새끈하게 빠져나온 탓에 그렇게 묻히기에는 힘들 것 같고, 또 각본가나 감독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도 그냥 단발로 그치기에 많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ps. 많은 리뷰에서 이 영화를 “원숭이들의 다크 나이트”라고 한다. 이는 실로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CG가 내면 연기를 펼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최초의 영화로도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ps2. “아이가 전기에 감전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물 같은 걸.. 끼얹나?” : 이 걸 알고 있는 사람은 피식피식 웃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