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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여자의 남자 – 51

우리집 세탁기

우리는 결혼하면서 혼수에서 가전에 그다지 돈을 쓰지 않았다. 사실 돈이 별로 없어서 쓰지 못했다는 게 맞는 표현일텐데 우리의 신혼 가전 중 가장 고가의 물건은 컴퓨터였다;;;

세탁기는 원룸에 딸려있는 9kg짜리 드럼세탁기였는데 뭐 사실 이정도면 두 사람 빨래는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었고 때때로 성능에 불만은 있었지만, 어쨌든 좁은 집에 한 번에 널 수 있는 빨래량에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그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문제는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발생했는데, 일단 아기 빨래를 매일해야하는 건 하면되니까 거기까지도 참을만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서 발견되었다.

제인이가 며칠간 응가를 못해서 걱정을 살며시 할 무렵이었는데, 아마 그날 이모가 놀러오신 틈에 축적된 응가를 한 번에 한 거였다. 많은양의 응가는 이미 기저귀를 넘치고… 여튼 그래서 그때 쓰던 보송보송 이불을 그만.. ㅠㅡㅜ

그 이불이 의외로 부피가 좀 커서 아내는 이걸 빨아야한다며 겨우겨우 세탁기에 밀어넣고 문까지 닫는데 성공했지만, 세탁조에는 그야말로 모래한줌 들어갈 틈이 없었고 세탁을 마친 이불은 그저 젖은 똥이불이 되어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그 날 그 힘든 육아의 길을 헤쳐날오며 거의 울지 않았던 꿋꿋한 그녀가 전화로 목놓아 울었고, 난 퇴근하고 달려가 아직까지 따뜻한(?) 똥이불을 차에 싣고 봉천동 일대를 누벼 결국 이불빨래가 되는 세탁소에 이불을 맞기는데 성공했었다.

아무튼 그날 아내는 작은 용량의 이 구닥다리 세탁기를 미워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세탁기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었기에, 나는 이사가면 다른 건 몰라도 세탁기는 크고 좋은 거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우리가 이사를 좀 앞당긴건 오피스텔 꼭대기층에서 아기와함께 여름을 나기란 불가능할거란 생각에서였지 세탁기를 빨리 사려고했던 건 아니었다.

암튼 전세계약을 하고 나서 우리가 맨 처음 한 일은 아기을 들쳐업고 ㅎㅇ마트로 달려간 일이었다. 그 전에 아기용품사러 백화점갔다가 봐둔 모델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거기 영맨 아저씨가 아내가 치를 떠는 H세탁기를 온갖 할인 프로모션을 다 붙여주겠다고 작업이 들어오는 거였다. (이때 난 아기를 메고 매장을 빙빙 돌면서 터치식 패널로 된 모델이냐 조그 다이얼로 된 모델이냐를 생각하고 있었다. 난 전자제품을 살 땐 거의 한 두 개 선택지를 압축해놓는 편이라 그닥 선택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도 않고 용팔이멘트는 귓등으로 듣는편이다)

암튼 거기서 별 영양가 없는 소리를 듣고 나와 길 맞은편 L사 대형 대리점으로 다시 방문. 결국 선택은 처음 사려던 것(20-22kg급)보다는 좀 작은데 침구 살균 기능이 있고 하단 서랍까지 붙여서 ㅎㅇ마트의 H세탁기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마법을 보여준 직원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마술같은 할인 테크트리를 작성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대기업은 똑똑해야 들어가나보다 싶었다)

어쨌거나 아내는 세탁기를 계약(?)하고나서도 사준다니 고맙지만 우리 형편에 너무 과한 세탁기를 산 거 아니냐며 염려도 했지만(여보 그걸로 치면 우리 아이맥은;;;;) 이사 후 사용하는 세탁기는 완전 대만족이다. 물론 비싼 가전은 대부분 그 값을 하게 마련이겠지만, 전자기기 못지 않게 생활가전을 선택하는 것도 상당한 안목과 직관이 요구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아… 가전쪽에 취업할 걸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