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4
전투요정 유키카제는 칸바야시 쵸우헤이가 1982년 발간한 동명의 SF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입니다. 원작소설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적이 없었습니다. 다소 건조한 문체로 쓰여졌다는 평을 받는 원작 소설의 작가가 ‘뉘앙스가 훼손된다’는 이유로 완강히 거부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음달 (12월)에 한국어 판이 국내에 출간된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본 작품은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요정이나 미소녀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전투요정이라는 것은 이른바 인간을 도와 전투용 기기를 제어하는 인공지능인 전투지성체를 가리키는 말일 뿐이지요. 사람을 믿지 않고 오직 자신의 파트너인 전투 지성체만을 신뢰하는 무감각하고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인 주인공과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든 완성도의 전투 지성체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스토리는 좀 난해한 편입니다. 원작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리라고 생각은 되지만 5회의 짧은 분량을 진행하면서 곁가지를 많이 쳐내버린 느낌으로 조금 썰렁한 느낌도 있고, 딱히 매 에피소드마다의 연계성도 그리 긴밀하지는 않습니다.따라서 에피소드마다 뭔가 떡밥은 던지지만 다음 편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이거 어떻게 될까?’ 싶은게 그냥 아무것도 아닌 지난 일이 되어 있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집니다. 다만, 현실감은 전혀없지만 압도적인 공중전 연출 하나 만큼은 참으로 빼어난 작품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CG로 제작된 전투기들의 모습은 정말 멋집니다. 다만 2D와의 이질감이 너무 심한데다가 3D가 주는 정교함에 반해 2D 작화는 좀 엉성한 느낌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D로 전투기를 묘사한 방식은 효과적인 연출을 가능케했다고 봅니다. 아울러 폭발효과와 기상효과도 3D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기동자체는 말이 안될지는 몰라도 굉장히 임펙트 있는 화면을 만들어 냅니다.

또한 특유의 굉장한 속도감과 그 긴박함 속에서 긴장감의 끈을 놓치지 않는 정적인 장면의 효과적인 조합이 멋지지요. 전투신 자체는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매우 짧은 편에 속합니다만, 특별히 더 아쉽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운을 남기지도 않아요)

캐릭터디자인은 메카닉물이나 전쟁물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분히 순정 만화적인 느낌의 남성 캐릭터들과 패션 일러스트를 보는 듯한 신체 비례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특히 특수전 부대장으로 나오는 여성 캐릭터… 전형적인 학원풍(학원물풍이 아니라 학원에서 배우는 그림체)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의 디포메이션입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작품 분위기와는 매치가 어느 정도 된다고는 보입니다.

또한 이런 그림체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두 남자 주인공의 동성애코드(거의 야오이물의 느낌이 물씬)는 약간 당혹스럽습니다. 뭐 자기들이 사랑한다고 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지만 말이지요. 제가 볼 땐 ‘잭’이 그렇게 들이대니까 후카이 중위가 비뚤어지는 겁니다.

많은 일본 SF 애니메이션들은 소위 ‘신인류’라는 것에 대해 많은 기대감을 보입니다. 대놓고 신인류 이야기를 하는 경우로는 ‘아키라’나 ‘애플시드’와 같은 부류가 있겠고, ‘공각기동대’ 역시 이와 같은 선상에서 해석할 수도 있겠지요. 저 유명한 ‘에반게리온’에서도 ‘인류보완계획’ 따위를 거들먹거리면서 또 신인류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역시 전투요정 유키카제에서도 유키카제와 후카이중위와의 긴밀한 관계 자체를 들어서 새로운 생명체의 가능성이라는 둥 ‘신인류’에 대한 암시를 합니다. ‘신인류’라는 단어 자체도 일본식 조어인데, 그렇게 꾸준히 신인류, 신인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어찌 보면 그들의 유전자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조적인 열등감의 표현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외국인과의 결혼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도 문화적인 차원이나, 혼혈 인구의 비율 자체를 높이려기보다도 그러한 ‘신인류’ 바람의 다른 양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역시나 개인적인 추측일 뿐 근거는 없습니다. ) 하지만 정말로 그들 자신들에게 존재하는 큰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면, 역시 그것이 어떤 생물학적이거나 유전적인 요소가 아닌 것임도 동시에 알고 있어야 할 것인데 말이지요.
이상, 모처럼 휴가를 받았지만 비가 억수같이 오는 바람에 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다운받아 본 애니메이션 감상평이었습니다.
Trackback URL : >http://soooprmx.com/wp/archives/347/trackback
No Comment.
Add Your Comment